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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한 손으로는 어림없다. 조심조심 두 손으로 감싸야 들린다. 여러 번 이사에 많은 것들을 버렸지만 아직도 거실 장에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이 돌이다. 굳이 이 돌의 이름을 붙인다면 목숨 수(壽)자를 쓰는 수석(壽石)이 아니고 물(水)수자인 수석(水石)이라 부른다. 흔히 생각하듯 수석에 취미가 있어서가 아니다. 물처럼 흘러 온 물속의 돌이니 단순하게 그렇게 부르는 것이며 어쩌다 보니 돌이 내게로 왔고 한 지붕 아래 여태 머물고 있는 것이다.

39년 전, 직장을 따라 머문 곳은 강물이 마을을 돌아 흐르는 남한강변이었다. 그 해 여름, 한차례 장마가 지나자 다시 햇빛이 사나워졌다. 탁했던 물빛이 말개지고 물밑이 환히 보이면서 여기저기 강바닥이 드러났다. 휴일, 남편은 강으로 바람을 쐬러가자며 나를 이끌었다. 그런데 바람을 쐬러 가자던 남편의 시선은 오로지 강바닥 돌에 있었다. 몸체가 드러난 돌들을 뾰족한 갈쿠리로 뒤적이고 발로 툭 건드려 보거나 손으로 뿌리를 뽑아도 본다. 이리보고 저리 보며 갸웃거리거나 미소를 짓는다. 그날 남편은 늦도록 그야말로 돌에 미쳐있었다.

어둑어둑 사방이 어두워질 무렵 이젠 소리조차 나오지 않고 지친 상태였다. 그때였다 저만큼 그의 목소리가 쏟아지는 별처럼 들려왔다. "찾았어! 찾았어!" 내 눈엔 그저 돌 그 자체였건만 그는 보물이라도 캐낸 듯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 후 그곳을 떠날 때 까지 남편은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 돌에게 마음을 주었다. 원한다고 휘릭 온다면 세상 신경 쓸 일이 있을까. 돌 찾는 일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돌에 팔려 끼니를 거르는 것쯤은 허다했고 종일 발품을 팔아도 허탕을 치거나 겨우 밋밋한 돌 하나에 만족해야했다. 어쩌다 장미 모양 돌이나 물개모양이 새겨진 근사한 수석을 얻는 행운도 있었는데 정말정말 어쩌다였다. 그렇게 오랜 발품 끝에 찾은 돌은 쉽게 찾은 돌보다 기쁨이 훨씬 더 컸다.

늘어나는 돌을 바라보며 흡족해했고 뿌듯함도 돋아났다. 차츰 돌에 대한 사랑이 욕심으로 변색이 되어 갈 무렵이었다. 발령이 나서 이사를 하려니 돌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문제였다. 어떻게든 모두 가져가서 쌓아놓을까 아님 아버님 댁에 놓을까 생각해봐도 마땅치가 않았다. 이건 가져가고 저건 누구 주고 했건만 추리고 추려도 10개가 넘었다. 셋방살이 하는 형편에 돌이 짐이 된 것이다. 아깝고 안타깝지만 고민 끝에 우린 현실적인 결정을 내렸다. 5개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돌을 좋아하는 동료와 동네 분에게 드리기로. 그 때 선택된 돌이 지금의 이 수석(水石)이다.

남한강변을 떠난 후, 삶은 수석으로부터 멀어져갔다. 그러면서도 가끔 아름다운 수석을 보면 가져올 걸 하고 아쉬워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오히려 잘했지 싶다. 결국 남은 건 이 검은 돌 하나지만 수석 이상의 의미를 건네고 있다. 이 돌은 버림의 미학과 인생에 대한 해석을 깨닫게 해주었다. 만약 그 많은 돌들을 가져왔다면 이런 우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을까. 돌아보면 그토록 세상없는 일이라고, 세상없는 물건이라고 여기던 것도 모두 지나간다. 그래서 세상 순환엔 영원(永遠)한 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생각의 깊이도 의미도 행동도 모두 시절에 따라 변하겠지만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수석(水石) 자체는 삶의 본질이 아니다. 그러나 그를 통해, 돌 위로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으며 나를 추스르기도 한다.

물끄러미 수석을 바라본다. 모든 것이 하나로 융합되고 그 속으로 하나의 강이 흐른다. 강은 시간의 근원에서 흘러나와 돌 위로 흘러간다. 돌에는 태곳적의 빗방울이 새겨져 있고 돌들의 말씀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과 말들이 흘러왔다 흘러간다. 강물은 그 자신을 상대로 소리를 냈고 나를 위해서도 소리를 낸다. 덥다덥다 하지만 머지않아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어오리라.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 수석위로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으며 더위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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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