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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02 15:19:55
  • 최종수정2020.02.02 15:19:55
어린 시절에 즐기던 놀이가 있다. 둥근 감자를 반으로 잘라 표면에 잉크나 물감을 묻히면 일종의 스탬프 같은 것이 되는데 종이에 찍으면 신기한 문양들이 만들어졌다. 나와 동생은 그 스탬프에 물고기나 둥근 달을 새기길 좋아했고 놀이는 어린 시절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동생과 내게 이 놀이를 알려 주신 분이 친척인 'ㅍ'아저씨다.

오래 돼도 참 오래된 깊은 겨울이었다. 윗목에 놓인 걸레와 대접의 물이 꽁꽁 얼고 이불을 덮어도 덜덜 떨렸던 한밤이다.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안와 눈만 말똥거리는 차였다. 바람소리 대문 덜컹이는 소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문 앞에서 "형님... 형님... 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형님이라는 소리에 아버지가 문을 열었을 때 마루 앞에 초라하고 꾀죄죄한 행색의 거지가 서 있었는데 그 분이 바로 'ㅍ'아저씨였다. 아저씨는 연신 '형님 죄송해요'를 연발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 때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아저씨의 몸에 걸쳐진 노란조끼였는데 그 노란조끼는 어린 나에게 너무나도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저씨는 마음이 많이 아픈 분이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대학생이었던 아저씨가 그렇게 된 데는 군대에서 겪은 폭행의 후유증으로 인한 정신문제로 집으로 돌려보내졌는데 반정신이 나간 상태라는 것이다. 그날 이후 아저씨는 가끔씩 우리 집에 놀러왔고 어머니의 음식이 맛있다며 칭찬도 잊지 않았다. 훤칠한 키에 넉넉한 인상이었던 아저씨. 동네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나는 믿기지 않았다. 정신이 나갔다면서 어떻게 놀이도 가르쳐 주고 역사이야기도 할 수 있지? 게다가 정신병이 뭔지 잘 알지 못한 나는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이 전혀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 남매를 만나면 더없이 행복해하던 얼굴. 어떻게 그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겠는가. 그는 누구보다 밝고 웃기를 잘하는 분이었다. 아이와 감자스탬프 놀이를 좋아하고 책과 노란 조끼를 즐겨 입던 청년. 그는 몇 년 후 어딘가로 홀연히 떠났다.

세상 어디에도 적응 못하고 의지할 곳 없던 아저씨는 오랫동안 방황을 하다 말년을 당신의 아버지 산소가 있는 시골에서 생을 마쳤다고 들었다. 그가 떠난 후의 흔적은 의외로 깔끔했단다. 비록 마음의 병을 앓았지만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다. 그가 사람들 말대로 온전치 못했다는 말이 진실인가. 그는 미친 게 아닌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놀라고 절망한 초현실주의 청년이 아니었을까 싶다.

돌아보면 그의 마음에 내재한 무의식 속엔 순수하고 밝은 희망이 현실인보다 너무 커다랗게 자리하고 있었던 건 아닐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는 평생을 기인처럼 살았고 반 고흐역시 정신적 방황을 겪으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지켰다. 특히 고흐의 그림엔 노란색이 많이 보이는 것도 현실을 돌파하려는 무의식속 의식의 표현일 것이다. 그에게 노란색은 무의식인 상상 속 희망의 색이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서도 "의식은 마음전체에서 보면 한 조각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은 무의식 아래 의식이 존재해 있다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무의식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태초의 의식이며 이것은 무의식의 바탕위에 나타난다는 것. 의식이 나타난 형태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정신생활은 무의식에 의해 이루어져 무의식의 바탕위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노란조끼를 즐겨 입던 외로운 영혼. 수많은 색 중에서 왜 노란색이었을까. 혹시 노란색은 그의 삶을 유지하게 한 위로와 기쁨의 색은 아니었을까. 어둠에서 밞음을 창조한 태초의 빛처럼 지고의 순수함과 밝음의 본성을 내포하고 있던 영혼이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의식 세계는 현실의 압박에 의해 부서졌다. 그럼에도 그의 무의식세계는 절망보다 희망을 소망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의 무의식세계 중심에 밝고 순수한 노란색이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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