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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란

수필가

난생처음 '스투파의 숲'을 들어섰다. 전시장엔 전체 97점 중 45점이 남인도 유물들이다. 그 중심에 스투파가 서 있다. '스투파'란 석가모니 붓다의 유골을 모신 곳으로 인도의 옛말로 '탑'을 뜻하는 성스런 예배 대상이다. 이번 전시는 '스투파'를 둘러싼 울타리와 문에 조각된 부조(浮彫)의 도상(圖像)들을 통해 남인도인들이 어떻게 자신들의 토속신앙에 맞춰 불교를 소화했는지를 듣는 불교미술 전시다.

그림엔 소리가 없다. 하지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들을 수 없는 건 아니다. 도상(圖像)들에 새겨진 2000여 년 전의 모든 풍경과 사람들이 당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만 해도 그렇다. 열대 계절풍인 까닭에 사시사철 덥고 습하며 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려 토양을 적시고 모든 생명이 울창하게 자라는 남인도의 풍요가 표현되어 있다. 남인도인들의 심성은 어떤가. 주변 나라와 교류가 활발했기에 팍팍한 북 인도보다 좀 더 개방적이고 열정적으로 보인다. 그래서일까 남인도 미술에는 풍요를 나타내는 자연물과 넉넉한 심성들이 숲을 이뤄 여유와 풍성함을 건넨다.

그 서사가 조각에 남아 있다. 남인도인들이 석가모니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초기에는 아쇼카왕의 불교 전파 과정이나 석가모니의 인생 중요한 장면을 묘사하는데 주력했지만 이내 남인도 특유의 상상력과 활력의 미술로 발전한다, <상상의 동물>,<입에서 연꽃 넝쿨을 뿜어내는 자연의 정경>에서 보듯, 흘러가는 물과 연꽃 줄기처럼, 되풀이되는 생명력은 사람들에게 자연에 깃든 보이지 않는 존재를 믿게 한다. 즉 자연의 정령이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어 이를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한 '약샤와 약시'라는 신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상징물과 토속신앙이 어울려 부조를 통해 불교의 교리와 닿아 있었던 것 같다.

대표적 소재가 연꽃이다. 연꽃은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다. 동아시아에서 연꽃은 연화화생(蓮華化生)이라 칭한다. 즉 연꽃에서 만물이 신비롭게 탄생한다는 의미며 이것은 불교의 생성관(生成觀)을 담고 있다. 모든 생명이 씨앗을 맺고 자라다 다시 없어지고 다시 씨앗을 맺는 생산의 과정 풍요 속에서 생사의 윤회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것은 모든 생물은 생과 사를 반복한다는 뜻으로 불교 교리 매개물로 활용된 게 바로 스투파에 새긴 여러 형상들의 부조(浮彫)들이다. 거기엔 불교의 핵심인 윤회사상이 담겨있고 이것이 발원되어 업과 자비로 이어지게 하는 지침이 되었을 테다.

이어 전시 2부 '이야기 숲'은 간다라, 인드라 미술의 핵심인 석가모니의 일생, 그의 삶 이야기다. 북인도 불교가 남인도로 전파하는 과정에서 자연물을 통한 가르침에서 의인화된 불상에 이르기까지 변천 과정이다. 이는 특정인을 향한 우상화 믿음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사람을 위해. 사람에 의한 신앙임을 투영화 시킨 수평적 표현임을 드러낸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머리 다섯 달린 뱀이 지키는 스투파><사리함을 옮기는 코끼리> <빈 수레>에서 보듯, 남인도인들이 지켰던 신앙의 모습은 붓다에 대한 최고의 존경과 경배의 자세에 나타나 있다.

울창한 숲 앞에 서면 호기심과 설렘 두려움 또는 신비로움을 갖게 된다. '스투파의 숲'도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들어간 '스투파의 숲'엔 온갖 생물이 숨 쉬고 있었다. 그런데 숲을 깊이 들어갈수록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다를 바 없는 생(生)과 사(死)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시했던 것 같다. 결국 인간의 숲이나 종교 숲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핏 사람을 중심으로 사람을 바탕으로 한, 사람이 가꾸는 숲이 신앙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스투파 숲'은 내겐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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