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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의 '결' - 탑동양관

청춘이 깃든 공간
청주 근대문화유산을 찾아

  • 웹출고시간2016.10.06 18:39:41
  • 최종수정2016.10.06 18:39:41

탑동양관 제4호

예전엔 미처 몰랐다. 삼 년 동안 내 집처럼 드나들던 공간이 충북유형문화재란다. 중등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곳이자, 학문과 미래의 꿈을 키웠던 요람이다. 까마득히 잊고 지냈던 학교로 향하니 묘한 감정에 마음이 들뜬다. 정문을 들어서니 왼편 운동장에는 고등학교 건축물이 앉아 있다. 눈앞에 언덕은 더 높아진 듯하다. 저 언덕을 넘어 오른쪽으로 휘돌면 붉은 벽돌 건물 양관이 보이리라. 언덕을 오르자 집들이 오밀조밀한 동네가 펼쳐진다. 주변에 꾸며진 드넓은 잔디밭과 잘 자란 나무들이 꼭 사차원으로 공간 이동한 듯 생소하다. 양관만 눈에 익숙하다.
교정이 참으로 낯설다.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맞다. 1983년 2월 졸업하여 어언 33년의 세월이 흐른 탓이다. 살아가는 동안 학교 앞을 여러 번 스친 적 있으나 졸업 후 교정에 발을 디딘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내가 문화재에 관심을 가지고 교정을 찾아 나설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슴에 부푼 꿈을 안고 드나들었던 공간이라 더욱 새롭다. 무엇보다 친구들과 머물렀던 양관이 청주 근대문화유산이라는 것에 가슴이 뿌듯하다.

탑동 양관 제5호(왼쪽)·탑동 양관 제6호

양관은 교실이 아닌 주택처럼 설계된 서양식 건축물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내가 졸업 한 후 1983년 3월 충북유형문화재 제133호로 지정된다. 양관은 1904년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하여 1906년부터 1932년까지 6동의 건물을 완성하였다. 선교사들이 주거용으로 건축하여 이용하다가 교실이 부족하여 교실과 양호실 등으로 사용된다. 현재 청주 탑동 양관 5동은 학교 법인 일신학원에서 소장하고, 양관 1동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다.

마당에 너른 잔디밭이 있던 곳이 친구들과 자주 찾아들었던 양관이다. 잔디밭에 앉아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도시락을 나눠 먹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수업을 마치고 마룻바닥에 기름칠하여 걸레로 윤을 내던 기억도 떠오른다. 그 시절엔 나뭇잎이 떨어져도 깔깔거리고, 말똥이 굴러도 웃음 짓던 나이가 아닌가. 두려울 것도 거리낌도 없던 청춘이 깃든 공간인 양관에서 그리움의 물결이 출렁인다.

정녕 눈에 보이는 것만 따라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칙칙한 회색빛 기와를 얹은 기와집이 많았던 시절이라 붉은 벽돌집이 눈에 띄었으리라. 겉모습으로 드러난 화려한 색깔과 꿈꾸던 전망 좋은 이층집이라 누구라도 좋아했으리라. 어린 마음에 훗날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이층집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국 전통 기와지붕과 서양식이 잘 어우러진 양관

오늘처럼 건물 외벽을 톺아본 적이 있던가. 탑동양관은 구조와 재료에 있어 한옥과 양옥의 절충식 건축물이다. 외벽은 조적식에다 내부구조와 지붕은 한식 합각지붕 형태다. 이 건물에는 당시 한국에서 만들지 못했던 유리를 비롯하여 스팀 보일러와 벽난로, 수세식 변기와 각종 창호와 철물 등이 사용 및 설치되었다. 양관의 기초석을 가톨릭 순교자들이 투옥되었던 청주감옥의 벽에서 가져다 사용되었고, 벽면에는 청주읍성 성돌이 일부 사용된 것 같다고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청주의 근대문화유산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청주에 서양식 건물이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1904년 선교사 밀러((Frederick. S. Miller)가 청주에 온 후부터이다. 예배당과 성직자들의 주거를 위해 새로운 형식의 건물이 들어선 것이 바로 탑동양관이다. 건립 시기에 따라 서로 다른 건축 특징을 보이지만, 이 시기 건립된 서양식 건물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청주제일교회

근대문화유산 중 다른 하나가 청주제일교회이다. 이 또한 선교사 밀러(Frederick. S. Miller)가 1904년 설립한 장로교회다. 양쪽에 긴 계단 위로 적벽돌로 쌓은 교회는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은 멀리서도 한눈에 돋보일 것 같다. 건립 당시 청주 지역유지와 젊은이들이 참여하였다. 청주 제일교회는 신식 교육기관인 청남학교를 세웠을 뿐 아니라 소민병원과도 협력하며 청주의 근대화에 이바지하였다.

외벽에 담쟁이가 길게 늘어진 양관 안으로 들어간다. 보수 중인 건물이라 조명을 켜지 않아 어둠침침하다. 하지만, 창으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과 담쟁이 초록 이파리 덕분에 안온한 기온이 감돈다. 아담한 방들이 이어진다. 보기에도 낡고 허름한 계단이 무너져 내릴까 조심히 오르나 삐걱거리는 소리가 더해진다. 백 년이 넘은 건물에 내려앉은 세월의 더께를 실감케 한다. 어서 보수가 완료되어 문화유산으로 길이길이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충북도유형문화재 제149호 청주성공회성당

청주 근대문화유산은 곳곳에 널려 있다. 충북도청(본관 및 충북산업장려관)과 청주 예능원, 충북도지사 관사였던 충북 문화관과 청주 향교, 청주 동부배수지 제수변실과 청주 성공회 성당 등이 있다. 매일 거리에서 무언가를 보고 스치지만, 제대로 본 것이 없는 것 같다. 현실에 필요한 부분만 갈구 하니 정녕 알아야 할 문화유산을 놓치고 마는 격이다. 평생 영원히 모르고 묻힐 문화유산도 많을 테니 안타깝다.

근대문화유산은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이다. 아니 삶의 흔적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머물렀던 공간에 청춘의 기억이 살아 있고, 삶의 체취가 녹아있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양관에서 함께했던 친구들과 나는 근대화의 물결의 주축에 서 있던 사람들이다. 결국, 자신의 의도든 아니든 변화의 물결을 타고 21세기에 머물러 삶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그리운 벗과 은사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떤 모습으로 지내는지 궁금하다. 마음속으로 벗의 이름을 크게 불러본다. 경옥아, 명희야, 명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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