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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곱만한 새끼거북 두 녀석이 어미 등을 기어오른다. 녀석들이 하도 꼬물거려 등딱지가 파일까 염려가 될 정도다. 어미도 어디론가 가려는지 왼발을 몸통 밖으로 쑥 내민 상태다. 천 년이 넘도록 같은 자세를 취하는 거북은 지겹지도 않은가 보다. 다른 한 발을 언제 뗄 지는 저기 보이는 미륵불만이 알리라.

검버섯이 덕지덕지 핀 화강암의 거북은 누군가의 비(碑)의 일부이다. 거북 모양의 비받침(龜趺)은 천 년 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음직한 돌거북. 침략자의 침탈에도 옮기지 못했을 육중한 바위이다. 그는 서럽게도 주체가 되지 못하고 빗돌[碑]을 도드라지게 할 받침돌이다. 돌거북은 21세기 후인의 눈에 들어 누군가의 치세를 받들고자 자리한 비(碑)의 받침돌이 아닌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가.
두 마리의 새끼 거북을 알려주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문화 해설사는 대략 비의 주인과 지리적 역사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간다. 안타깝게도 비석이 사라지고 거대한 받침돌만 존재하니 그나마 거북에게 시선이 닿은 것일까. 돌거북 임자를 제대로 만난 격이다. 여하튼 새끼 거북이가 어미의 목말을 타려면 아마도 수백 수천 날이 걸릴지도 모른다. 거북의 행동이 상징하듯 느림의 미학 선구자가 아닌가.

사찰이나 능에는 비(碑)가 서 있다. 비석이란 무덤에 묻힌 사람의 훌륭한 공적과 은혜를 널리 기리고자 돌 표면에 업적을 정성껏 새겨 세우는 것이다. 비의 구성은 받침돌을 뚫어 비신을 세우고 머릿돌을 얹는다. 받침돌은 대부분 네 발이 몹시 작고 짧은 목과 머리를 꼿꼿이 세운 거북의 형상을 하고 있다. 머리는 거북과 용, 간혹 말의 머리를 한 모양도 있다.

거북 등에 말뚝을 꽂은 양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신라 태종무열왕비다. 현재 비의 몸돌은 사라지고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용을 새긴 머릿돌만 남아 있다. 받침돌의 거북은 목을 꼿꼿이 높이 쳐들고 발을 기운차게 뻗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벌름거리는 코에선 금방이라도 뜨거운 콧김이 뿜어낼 듯 생동감이 인다. 문득 왜 하필 많은 동물 중 느림보 거북이를 받침돌로 형상화했는지 궁금하다.


거북은 신령스러운 동물로 장수를 상징하며 신화와 전설이 많다. 거북은 한자로 귀(龜)이다. 기린과 봉황 그리고 용과 거북은 4령(四靈)으로 불린다. 옛 기록에 천 살 먹은 거북은 사람과 이야기도 나눈단다. 또 거북의 껍질을 빻아 불태워 먹으면 천 년을 살 수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설도 있다.

진귀한 비를 세운 인물은 평민이 아니다. 왕이나 왕족, 나라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지체 높은 분들이다. 업적을 기리는 의미도 있지만, 아마도 탑비에 거북을 새긴 의미는 불로장생의 의미가 깊을 듯싶다. 그를 사모한 후인들이 그의 영혼이라도 곁에 있어 주길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춘추의 비석도 그의 동생인 김인문이 형의 위대한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자 세웠다. 태종무열왕비 받침돌인 거북의 형상은 신라인의 진취적 기상을 보는 듯 기운차다. 과연 동양권에서 뛰어난 걸작이라 표현하고도 남을 작품이다. 오래된 비는 그 자체가 하나의 역사책이다. 정작 빗돌은 사라지고 없다. 지리적 역사적 고증으로 추측할 뿐이다. 물상을 자세히 뜯어보아야 한다. 아니 마음을 담아 주시해야 대상이 보인다고 했던가. 충주 미륵리 사지귀부(忠州彌勒里寺址龜趺), 거북의 얼굴은 다부지고 강하여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보인다. 아마도 지역적 요충지인 미륵리를 지키고자 한 염원이 서려 있다. 지금의 자리에 돌출한 자연석에 새겼다고 추측하는데, 그래선지 거북의 자세가 지극히 안정적이다. 그 기상과 천 년의 기운이 후인에게 전해진다.

무엇보다 새끼거북이 인상적이다. 미륵보살을 만나고자 온 지인들이 앞서 돌거북에 사로잡혀 있다. 거북의 왼쪽 등딱지 앞부분에 조각한 두 마리의 새끼 거북은 금방이라도 꼬물거릴 듯 귀엽다. 어미 등에 새끼를 새긴 장인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거북이가 온종일 내 머릿속을 장악한다. 그는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장인이라고 나 스스로 단정해 버린다.

죽은 자의 영혼을 기리는 비(碑) 앞에 서 있다. 어떤 이든 빗돌 앞에선 엄숙한 자세로 맞는다. 장인도 그것을 익히 알기에 스치고 지나갈 위치에, 두 눈을 크게 뜨고 톺아보아야 할 자리에 앙증맞은 새끼거북을 그려놓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바위도 살아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돌 표면의 빛깔을 보면 알 수 있단다. 여하튼, 바위에 새끼 거북을 조각한 그의 탁월한 감각과 식견에 탄복할 뿐이다.

두 마리의 새끼 거북은 휴머니즘의 상징이다. 북미 지역에 거주하는 인디언 크리족의 삶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이 '존중'이란다. 그들은 생물·무생물 모두에 생명이 있다고 믿고, 그들 모두를 원형의 관계로 존중의 태도를 보인다. 사랑을 주면 뜻을 베푸는 동물들뿐만이 아니라 돌, 바람, 공기 등속에도 뜻이 있다고 본다. 생명의 존엄이 퇴색해가는 미래를 예감한 장인의 촌철살인 한 혜안이 자랑스럽다.

현대인은 가볍게 사라지는 물질에 집착과 안간힘을 쓰며 경쟁한다. 그 속에서 이긴 자만이 성공한 삶인 양 되어버린 도시인의 삶. 윤리와 감성은 점점 사라지고 물질적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로 전락하고 있다. 요즘 터진 인재참사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마음결을 다스리지 못한 탓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그에 인하여 고통을 받고 있잖은가. 무엇이 중요한지를 다시금 돌아보라는 의미일 것이다.

혼돈 속 미래를 관장할 미륵불은 언제 오시려는가. 한 발을 내밀고 천 년을 넘긴 돌거북에서 답을 얻어야 할 듯싶다. 새끼 거북은 인간의 마음을 아는지 귀여운 엉덩잇짓을 해대며 꼬물꼬물 기어간다.

이은희 작가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2013년 충북여성문학상과 제4회 민들레수필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2015년 김우종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검댕이', '망새', '버선코', '생각이 돌다', '결'

수필선집 '전설의 벽'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편집장,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역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현) 계간 '수필세계', '에세이문예' 연재수필 집필 중,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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