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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6.30 20:23:12
  • 최종수정2016.06.30 20:23:12

정북동토성 가는 길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가장 멀다고 했던가. 내 마음과는 다르게 머리에만 담아두고 망설이다 여기까지 온 것이다. 열정이 부족한 탓이다. 토성은 내가 머무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정북동토성은 뉴스 매체로 먼저 접하고, 최근 청주문화원 강의에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알게 된다. 뒤늦게 토성을 톺아본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듯 발걸음이 가볍다.

눈앞에 드넓은 미호천 평야가 펼쳐진다. 논물을 차고 비상하는 새들과 사색에 든 듯 서 있는 백로의 모습이 평화롭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없이 이어진 드넓은 들판. 그런데 물을 댄 논과 경작된 밭만 보일 뿐 정작 성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태양이 정수리를 내리 쐬는 정오 무렵, 인솔자 꽁무니를 좇아 지칭개가 흔들리는 논과 논 샛길로 느릿느릿 걸어 들어간다.

정북동 토성 이정표

토성이 저기 있다고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모르리라. 넓고 넓은 평야 가운데 두두룩하게 언덕진 곳이 성이란 걸 누가 알겠는가. 토성을 일반 성곽처럼 돌을 높이 쌓은 옹벽을 상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성에 가까워질수록 흙으로 쌓은 옹벽이 보인다. 길고 네모나게 쌓은 성벽과 성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구획된 터를 중심으로 삶의 체취가 배인 숨결과 흔적을 따라간다.

성벽에 올라 융성했던 천년 고도 성곽의 모습을 그려본다. 스러졌던 성문과 성벽이 벌떡 일어나 에워싸고, 큰길에는 분주히 움직이는 각양각색의 선인들의 모습이 살아 움직인다. 시선을 성 밖으로 돌리니 미호천 평야이다. 허리 굽혀 논과 밭을 경작하는 농부들이 검은 점처럼 보인다. 더 멀리 시선을 두니 토성을 산으로 에워싼 듯 동쪽으로 상당산과 동남쪽으로 우암산, 서남쪽으로 부모산과 동북쪽으로 증평의 이성산과 두타산, 북쪽으로는 목령산이 보인다.

산위에는 모두 산성이 축조되어 있다. 자주 오르내렸던 상당산성이 그려지고, 가깝게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토성 바로 곁에 자연적 해자 미호천 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산성에서 바라보면 토성까지는 산 너머 산이다. 지리적으로 탄탄한 철통 요새가 어디에 또 있으랴. 자연적이든 인공적이든 이중 삼중의 방어시설로 요새화한 토성은 선인들의 주거지로 삼아 드넓은 평야의 곡창지대로 이루게 한 것은 아닌가 싶다.

적의 침입을 막고자 못을 만든 1차 2차 해자

적이 토성까지 진입한다면 성문보다 먼저 성벽 둘레를 따라 파놓은 해자와 맞닿는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막고자 성 주위를 둘러서 판 못이다. 바로 성벽을 넘지 못하도록 마련한 군사적 전략이다. 무엇보다 해자를 만들며 나온 흙으로 성벽을 쌓은 점에서 선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정북동토성은 성벽 둘레에 1차, 2차 해자를 둬 방어시설을 탄탄히 구축한다. 적군이 엄습해도 일단은 시간을 벌리라. 그들이 못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성안의 선인들은 다른 대비를 했을 터니 이 또한 얼마나 탁월한가.

흙으로 쌓은 정북동토성.

토성은 말 그대로 흙으로 쌓인 성이다. 목책과 더불어 인류가 만든 최초의 방어시설이다. 정북동토성은 평지에 자리한 정방형의 토성이고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존재가치를 더한다. 토성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이 거주하였을 것이고, 정치집단이 권력을 행사했으리라 본다. 조선 시대 승장 영휴가 쓴 '상당산성고금사적기'를 보면 후삼국 시기에 궁예가 이 토성을 축조하여 곡식을 저장하였다가 상당산성으로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출토유물과 축성방식, 그리고 주변 여건으로 보아 약 2세기경인 청동기 말기나 원삼국시대에 최초의 축성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단다. 정북동 토성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토성 중 보존상태가 가장 좋고, 초기 성곽 축성의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는 유적이다.

역사적으로 오래된 유적지가 청주에 자리한다. 어느 나라 중요한 거점이 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거대한 국가가 존재했으리라 추정한다. 이즘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돌아볼 만하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니리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작용했으리라. 평소 문화재에 관심이 많으나 정작 청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하여 무지하여 목말라하던 터였다. 마침 청주문화원에서 주최한 '청주,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제목으로 '청주학' 강의를 들으며 조금이나마 해갈 중이다.

지칭개가 흔들리는 논과 논 사잇길로 걸어가는 문화탐사단

서로 같은 성안에 있어도 마음은 천 리 밖에 있다. 그들을 탓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성안에 들자마자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광경이 펼쳐진 것이다. 옛사람의 생활 터에 동호회 천막을 치고, 수많은 성 사람들이 오고 갔을 장터가 그들의 비행기 활주로라니 말문이 막힌다. 그들이 토성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안다면, 한유하게 비행기를 날리고 있으랴. 급기야 함께 온 분이 '유적지에서 이런 놀이를 해도 되느냐.'고 질문한다. 다들 입을 다문 채 아무런 대답이 없다. 아마도 토성 답사를 온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하나의 답변을 했으리라.

먼 훗날 우리도 역사 속에 묻히리라. 작게 보면 나는 우주 일부분이고,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하나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나 어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 하나같이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숨결을 이어받은 이 땅에 후인이다. 성문 옆 표지판을 찍으려고 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비행기를 매만지던 남자가 미안한 듯 자리를 피해준다. 그 또한 가슴으로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늘에서야 토성에 서게 된 내 모습과 무엇이 다르랴. 세파에 맑던 정신도 쉬 소모되어 흐리멍덩해진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 멀어지지 않도록 마음 단속을 잘하자. 돌아오는 길, 플라타너스도 나 보란 듯 논물에 머리를 박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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