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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의 '결' - 쓰임에 대하여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둘러보고

  • 웹출고시간2015.11.05 19:48:18
  • 최종수정2015.11.05 19:48:18

비엔날레 입구의 조형물

영상이 소리 없이 흐른다. 대파를 송송 써는 소리에 이어 프라이팬에서 달걀이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물을 조물조물 무칠 때 손의 촉감이 느껴진다. 된장국이 끓을 땐 된장 특유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 맛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온몸에 감각이 일어 내가 요리를 하는 양 착각이 들 정도다. 정성스레 만든 된장국과 나물을 하얀 보시기에 하나씩 내놓는 손끝은 여물고, 밥상에 오른 음식이 하나같이 먹음직스럽다. 입안에 군침이 괸다. 영상이 설치된 장소는 도자기 그릇 앞이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면을 새로운 듯 대여섯 명의 여성이 뚫어지라 바라보고 있다. 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장에 내로라하는 작품들은 그저 그렇게 스치고, 흔하디흔한 음식을 만드는 여인의 손놀림 앞에서 시선을 빼앗긴다. 우리는 하필 집에서 즐겨 먹는 된장국 앞에서 입맛을 다시며 감동하는가. 당신이 차린 밥상 앞에 앉고 싶은 것이다. 아니 당신의 모습을 닮고 싶은 건 아닐까. 된장국을 끓이는 솜씨와 밥상을 정성스레 차리는 손매는 그리운 어머니의 형상이다.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에서 연출한 '서민의 밥상' 영상장면

서민의 밥상을 연출한 작가는 분명히 남다른 작가임이 틀림없다. 자신이 빚은 그릇을 내세우기보다 그릇에 담길 음식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다. 아니 음식을 만들어 밥상에 올리던 우리네 어머니를 떠올린 점에서 감동을 낳은 것은 아닐까. 관객인 내가 일상에서 몹시 그리워하고 누리고 싶은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생명을 연장하고자 매일 먹는 밥과 반찬이 그의 용기에 담겨 차려진다. 어찌 보면 작가의 작품은 인간의 생명 연장선에 있다.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공예품(그릇)은 실생활에 은밀히 파고들어 여러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런저런 깊은 생각에 빠지니 지금껏 스쳤던 작품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작가는 자신이 만든 그릇의 쓰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 지나간 시간의 궤적을 거슬러 올라 선사시대에도 음식을 담을 용기가 없을 땐 자연의 어떤 한 부분이 그 역할을 대신했으리라. 앞으로도 쓰임의 대상은 시 공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대대손손 이어지리라 본다. 대상은 문명의 발전과 더불어 '공예'라는 이름으로 오늘 전시까지 이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HANDS+ 확장과 공존"이란 제목으로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옛 청주연초제조창에서 열렸다. 공예비엔날레가 열릴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지 않은 시민 중 한 사람이다. 그때마다 우리의 공예작품이 국내뿐이 아닌 국제무대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도 간절하다. 올해는 특별히 세계적인 작가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과 국내 작가 15인이 일 년에 걸쳐 인문학으로 접근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더욱 돋보인다. 해를 거듭할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다행이다.

작품 '가든하다'의 모습

작품을 보는 사람마다 관점과 해석을 달리하리라. 나 같은 사람은 일방적인 전시보단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작품전을 좋아한다. 본 작품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작가가 생각한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볼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사람들은 작품에서 낯선 이야기 얻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특히 알랑드 보통과 합작한 '가든하다'란 작품에서 지인들이 고개를 끄덕이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도슨트의 해설 없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정원에 놓인 작은 화분에 담긴 식물쯤으로 보아 넘긴다. 그러나 작가의 심중을 알았을 땐 다른 감각이 내 안에서 꿈틀거린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뇌리에 기억하진 않는다. 관람객은 그의 말을 달리 해석하거나 더 깊이 확장하여 나아가리라. 일렬로 세워진 식물이 담긴 네모난 도자기 형상이 도시의 집들을 표현한단다. 작은 흰 용기가 도시의 집들을 상징한다면, 안에 자라는 푸른 식물들은 생명체인 인간을 대변하는 것이 아닐까. 또 이렇게도 생각한다. 비슷한 집에서 사람들이 고만고만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나 자신이고,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살아가는 '공존'하고 있다는 걸 깨우치게 되리라. 그러기에 작품이 일상 속으로 들어와 공존할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하리라 본다.

2015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의 전시물 앞에서 관람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결국, 주제는 사랑이다. 알랭 드 보통 (Alain de Botton)과 15인의 특별전은 '사랑'으로 마무리한다. 꽃 그림 하나로 사랑 그 자체를 표현하기엔 무리가 없지 않다. 작가의 생각은 '사랑은 자세히 들여다보기'라고 정의한다. 공예비엔날레에 전시된 공예 작품들을 스치듯 바라보는 것이 아닌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다. 그래야 작품들이 내 안에 들어와 살아 숨 쉬고, 작가가 내포하는 그 이면까지 닿아 소통하리라. 예술가예 사랑의 시선과 정교한 터치의 손길이 뭇시선을 부른 것이다. 내 앞에 작품을 창조하고자 수많은 밤을 지새우고 혼을 불사른 작가의 열정을 그려본다.

다시 영상 속 여인의 손을 따라 시선이 옮아간다. 하얀 보시기를 두 손으로 정성껏 감싸 안아 밥상에 올린다. 아마도 작가는 이처럼 자신의 분신을 소중히 다루고 대하길 원했으리라. 인간의 삶 속에 빼놓을 수 없는 의식주 안에 존재하는 물상들이 허투루 만들어진 것이 없다. 그 속에는 우리의 피와 땀과 열정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부터 따라 온 된장국 보글거리는 소리와 냄새가 나의 눈과 코, 귀를 보챈다. 돌아가신 친정어머니의 손맛이 눈물이 나도록 그리운 저녁이다.

이은희 작가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2007년 제물포수필문학상, 2010년 충북수필문학상, 2012년 신곡문학상 본상, 2013년 충북여성문학상과 제4회 민들레수필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2015년 김우종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 '검댕이', '망새', '버선코', '생각이 돌다', '결'

수필선집 '전설의 벽'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 '에세이포레'편집장,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역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현) 계간 '수필세계', '에세이문예' 연재수필 집필 중,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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