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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3.02 18:15:27
  • 최종수정2017.03.02 19:42:15

국제차예절교육원에서 말차 시연이 열리고 있다.

절집에 든 듯 고요하다. 두 눈을 잠시 감으니 귓전에는 풍경 소리 대신 물소리가 또르르 흐른다. 숙우에서 찻물을 따르는 소리이다. 청량한 물소리는 차의 맛을 일부러 맛보지 않아도 맑고 향기롭다. 수많은 사람의 신경이 시연자의 손놀림과 찻그릇에 닿아 있다. 차를 달여 마시거나 다른 이에게 권할 때도, 차리는 방식이나 예의범절이 있다. 국제차예절교육원은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말차 시연을 보여주고 있다.

다관에서 찻잎이 알맞게 우러나길 기다리는 시간이 멈춘 듯하다. 고요 속에서 차를 나누는 행위는 아니 차를 입으로 마시지 않아도 모르는 사람과도 따스한 정(精)이 흐른다. 무엇보다 차를 배우겠다는 욕망도 들끓던 마음마저 수그러드는 기분이다. 이런 편안한 느낌이 들어본 것이 얼마 만인가. 겨우 칠팔 분만에 얻은 세환(世患)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결, 평상심이다.

정지연 국제차예절교육원 원장의 간단한 다기의 생활행다 시연을 하고 있다.

한 때는 황차를 즐겨 마신 적이 있다. 차를 마신 후 뒷맛이 달아 좋고, 무엇보다 정신이 맑아지는 듯해 자주 즐기던 차(茶)다. 그렇다고 다기를 제대로 갖춘 것은 아니고, 집안에서 차를 우려 대접하고 마실 정도이다. 다도를 제대로 배운 적 없고 여기저기에서 눈동냥으로 본 것을 흉내 내고 있다. 변명 같지만, 생업에 종종대느라 교육원에서 차를 배울 엄두를 내지 못한 것 같다. 아니 차의 맛보다 차를 우리고 마시는 행위가 그럴듯하게 보여 겉멋을 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전통차 시연으로 차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다도를 누리길 원한다.

가루녹차 말차 시연 모습.

차(茶)는 인간의 삶에 희로애락을 어루만지는 신이 내린 선물이 아닌가 싶다. 전통차와 인문학 특강을 준비하며 깊어진 생각이다. '차(茶)'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그가 머무는 초당 뒷산에 야생차가 하도 많아 그곳을 '다산(茶山)'이라 부르고, 심지어 자신의 호로 삼았다고 한다. 차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호를 '다산'이라 지었으랴.

다산 정약용은 낯설고 물선 강진으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곳에서 18년간 머물며 황상 같은 훌륭한 제자와 많은 후학을 배출한다. 더불어 목민심서와 흠흠신서 외 5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여 후세에 남긴다. 하지만, 업적이 많은 다산에게도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유배지에서 쓴 일기에 그의 심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정민이 엮은 '한밤중에 잠깨어'란 한시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겪은 절망과 한숨, 기다림과 자기치유의 시간 속에서 적어 내려간 진솔한 속내를 전한다. 자기 독백의 가까운 절절한 시어들이 그의 처지와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을 절절히 울린다. 유배 당시 그는 불혹의 나이, 젊은 혈기에 자신의 억울한 처지와 분노를 차(茶)로 다스린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배후에는 다인(茶人)의 길로 인도한 초의선사와 깊은 우정을 나눈 이가 있다.

한복을 차려입은 유치원생들이 생활행다 체험을 하고 있다.

한 사람의 생애를 바꿔 놓은 차(茶)는 그냥 차(茶)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후인은 억울한 상황에서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 절제의 미덕을 보여 준 다산을 높게 평가한다. 유배 일기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 날이 많다고 기록한다. 만약에 그가 다인의 길로 들지 않았다면, 끓어오르는 분노의 성정을 어찌 다스릴 수 있었으랴. 하지만, 마음을 다독일 따스한 차 한 잔 나눌 벗이 있어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가 입말로 하는 "차(茶) 한잔합시다."라는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아니 될 것만 같다.

지난 여름 고등학교 남학생들과 차를 나눈 기억이 떠오른다. 미래의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의 작가 탐방이다. 나의 말 한마디에 인생의 획을 그을 수도 있는 십 대 후반, 청춘의 나이다. 학생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고민하다가 작가가 되기까지 나의 삶을 진솔하게 들려주기로 한다. 그리고 기억에 남을 분위기를 선물하고 싶어 차를 준비한다. 탄산수와 커피에 길들어 아이들이 차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줄 알면서도 쌉싸래한 국화차를 내놓는다. 차에 관한 얕은 지식으로 '정신이 맑아지는 차'라고 말하며 차를 우려냈던 것 같다.

마른 국화꽃이 찻물이 닿아 화르르 피어날 때 그들의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 차를 따를 때 다기를 신기한 듯 바라보던 아이들의 샛별 같은 눈동자가 잊히지 않는다. 돌아보니, 그들의 표정에 내가 감명을 받은 격이다. 차를 두어 잔 부어 주며 나누었던 나의 말은 공중에 부유하고, 밤하늘의 별빛보다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가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날 격식을 갖추진 않았지만, 정성껏 우린 차로 동안 공부하느라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더불어 정신적 여유와 기운을 경험하고 우리의 차 문화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삼월이 되면 기다림에 긴 목은 더 길어진다. 은사님의 황홀한 초대이다. 암향이 가득한 정원에서 그리운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매화음(梅花飮)을 나누는 시간이다. 봄볕이 따사로이 비추는 날, 매화꽃 활짝 핀 나무 아래 둘러앉아 차(茶)와 시(詩)를 읊는 여유가 그립다. 천 년의 혼을 실은 가야금 선율이 울리는 듯하다. 매화 꽃잎을 띄운 차를 마시며 망중한을 즐기는 내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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