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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희의 '결' - 불비상

비석에 새긴 간절한 염원
1천300년 거스른 통일신라의 비상

  • 웹출고시간2015.04.02 15:21:10
  • 최종수정2015.04.30 16:03:04

계유가 새겨진 아미타불비상

돌의 표면을 톺아보고 있다. 비석에 새긴 크고 작은 섬세한 조각에 감탄사가 절로 흐른다. 조각은 쇠붙이를 녹여 거푸집에 부어 만든 주물이 아닌 돌을 쪼아 새김질한 불상이다. 주물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불에 녹여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돌은 단 한 번의 빗나간 망치질에도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러니 정을 내리치는 손짓 하나에도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불비상은 돌을 비석처럼 다듬어 네 면에 부처를 조각하고 발원문을 새겨 놓은 불상이다. 나는 천년이란 시공간을 초월해 비상에 새긴 문자를 바라보며 말을 걸고 있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끝내 말하지 못한 한 맺힌 발원이 무엇인가. 후인은 그 궁금증을 풀고자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무수한 문자와 무늬의 발원문을 돌에 새겨 넣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비석에 새긴 간절한 염원. 천삼백 년을 거슬러 온 통일신라시대 비상이 내 눈앞에 전시되고 있다. 일전에 알아볼 수 없었던 문자의 궁금증도 풀렸단다. 과학의 힘을 입어 문자를 낱낱이 새롭게 들추고 있다. 드러난 문자가 지나간 역사를 말하고, 시대상을 반추한다니. 그리 보면 과학 문명의 발전을 탓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불비상 특별전'에 불비상의 실측 그림 일곱 점이 함께 전시된 적이 있다. 지면에 가늘고 가는 무수한 곡선이 춤을 추는 듯했고, 반면에 돌에 새긴 선의 느낌은 돌이 주는 투박함과 무게감으로 거칠게 다가왔다. 그림은 종이에 여백의 미와 더불어 더 섬세하고 날렵하게 느껴졌다. 화가에게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관련자가 말하길 불비상 한 작품을 그리는데 일 년 이상 걸렸다고 들었다.

한 번 상상해보라. 완성된 작품을 보고 따라 그리는데도 이토록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돌에 무수한 무늬를 새길 때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으리라. 최초의 여성 사기장인 백파선도 고국에서 만들었던 도자기를 빚고 싶어 무진 고민을 했다고 전해진다. 일본으로 끌려간 그녀는 토질이 다른 환경이라 도자기의 상태도 같을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선인은 돌의 성질을 알았고 그들의 문화를 계승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 후대에 그들의 염원이 전해지리라 여겼으리라.

얼마나 한이 맺히면 돌에다 염원을 새기고자 했을까. 불비상 7구의 형태와 양상을 보고 백제의 유민들의 의해 발원 조성되었다고 추측한다. 나라의 중차대한 사건 앞에서 절망하지 않고 의연히 조각에 임했다는 것은 대단한 예인임이 틀림없다. 국가의 존립과 안녕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낳은 문화유산이 아닐까 싶다.

불비상에 기원을 하는 관람객

불비상에 매료되어 주말 연이어 국립청주박물관을 찾는다. 자꾸 보니 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불비상은 7구. 불비상에 담은 염원처럼 나에게도 곡진한 간절함이 있었던가 묻는다. 세상이 빠르고 각박하게 돌아간다. 불비상을 조각한 예인처럼 돌에 새길 정도의 간절한 소원은 없는 성싶다. 북측의 실세가 바뀌면서 세계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내국인은 동요 없이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 또한 남의 나라 이야기인 양 뉴스로만 인식하고 일상을 순조롭게 지냈던 것 같다. 과연 남의 일처럼 불구경하듯 보아 넘기며 지내도 되는지 되묻는다.

내 나이 즈음 세대는 분단의 아픔과 전쟁의 실상을 기록과 구전으로 들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지금 상태가 이전에도 훗날에도 계속 이어질 것 같은 착각으로 살아간다. 더구나 이산가족의 아픔도 없으니 그 어떤 상실감도 긴박감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동족상잔의 비극을 어찌 가늠할 수 있으랴. 그저 불비상을 바라보며 비석에 드러난 문자와 곡선을 보며 감탄하는 수준에 닿을 수밖에.

렌즈를 통하여 본 불비상은 더욱 찬란하다. 육안으로 볼 때보다 그 섬세함이 한층 더 도드라진다. '생각하는 부처가 새겨진 불비상'이 나의 마음을 뒤흔든다. 금동으로 빚은 반가유사유상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다. '반가사유상은 의자에 앉아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에 걸치고 오른쪽 무릎에 댄 채 손으로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이다.' 전문가는 반가의 독특한 자세 때문에 당시로써는 가장 어려운 조각이고, 고도의 창의력이 필요한 반가사유상의 조형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돌 위로 흐르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취한다. 아쉽게도 염원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한다. 그래, 염원의 무게가 아닌 나는 이것을 탐한다. 장인의 숨결이다. 정과 망치를 내리칠 때마다 호흡을 정돈하던 그의 자세다. 진정한 마음으로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때 깨달음이 다가온다고 했던가. 깨달음의 수행인 사유(思惟)를 위하여 조금 더 넓고 깊게 혜안을 떠야만 한다.


이은희 약력

-충북 청주출생, 충북대학교 경영대학원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2004년『월간문학』등단, 2004년 제7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2007년 제13회 제물포수필문학상, 2010년 제17회 충북수필문학상, 2012년 제17회 신곡문학상 본상 , 2013년 제8회 충북여성문학상과 제4회 민들레수필문학상 본상 수상. 2013년 국립청주박물관 사진공모전 금상 수상, 2015년 제6회 김우종 문학상 본상 수상 외 다수.

-수필집『검댕이』,『망새』,『버선코』,『생각이 돌다』,『결』

-수필선집『전설의 벽』출간.

-한국문인협회, 계간『에세이포레』편집장, 충북수필문학회 주간(4년)역임, 청주문인협회 회원, 충북여성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

현) 계간『에세이문예』「전설의 벽」연재수필 집필 중, (주)대원 상무이사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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