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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5.13 19:11:07
  • 최종수정2015.05.13 15:02:36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언어는 사회성이라는 특성이 있다. 언어는 사회적 약속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나무'라고 하는 것을 개인이 마음대로 '구름'이라고 바꿔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언어 공동체의 어느 성원은 그 언어 공동체에 의하여 선택된 기호 표현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언어의 특성인 것이다.

지명은 주민들 모두가 공유하는 지리적 위치 지정의 역할을 하는 명칭에 역사적 사건이나 꿈과 희망들이 보태져 사회적 약속과 관습으로 굳어진 것이므로 어느 한사람이 지어 부른다고 해서 만들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언어의 사회성과 지명 생성의 특성 때문에 천재지변이나 국가의 흥망과 같은 역사적 사건 등으로 행정구역을 변경할 때에도 주민들의 고유의 관습적 지명을 최대한 반영해 온 것이다. 따라서 지명의 역사적인 변천사를 알아보면 그 지명에 얽힌 유연성과 유래를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청주 청원이 통합된 지도 벌써 일년이 흘러갔다.

청주 청원 지역은 본래 하나였으며 근대에 들어서 고종 32년(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청주군(淸州郡)이 되어 27개 리를 관할하다가 제27대 순종 융희 원년(1907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24개 면으로 개편,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18면 343개 리를 관할하다가, 해방후인 1946년 청주읍이 부(府=市)로 승격하면서 청주시(청주읍)외 지역을 청원군으로 하였다가 60여년 만에 다시 하나가 된 것이다.

충북의 중심인 청주와 청원이 또 한번의 명칭 변화를 거치면서 그동안 숱하게 많은 변화를 겪어온 충북의 지명에 대하여 그 뿌리를 찾는 일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시급하고도 절실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청주 지형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며 청주 지역을 가장 대표할 수 있는 지명은 누가 뭐래도 우암산과 상당산성 그리고 무심천을 들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무심천은 청주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며 젖줄이다. 무심천은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환경을 제공함과 동시에 역사적으로 문화의 중심 역할을 담당해 왔다.

무심천(無心川)에는 무심천(無心川)이라는 지명 이외에도 '대교천(大橋川)', '심수(沁水)', '심천(沁川)' 등의 여러 명칭이 결부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심천(無心川)'이라는 명칭이 지형지물과는 관련이 없어 그 의미와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 '무심하게 말없이 흐르는 내'

· '무심하고 무정한 내'

· '물이 없는 내' 즉 '무수천(無水川)'이 변한 것이다

· '수심이 없는 내'라는 의미의 '무심천(無深川)'이 변한 것이다

· '무성(武城)뚝' 안으로 흐르는 '심천(沁川)'이라는 의미의 '무심천(武沁川)'이 변한 것이다

· 불교용어 '무심(無心)'에서 왔다

와 같이 아주 다양한데 그동안 무심천(無心川) 하류(지금의 운천동 지역)에 사찰이 많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불교용어 '무심'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게 여겨왔다. 지금까지 발견된 '사뇌사 명문(思惱寺 銘文)', '운천동사지 유물(雲泉洞寺址 遺物)', '신라사적비(新羅寺跡碑)', '흥덕사 명문(興德寺 銘文)', '구양사 명문(句陽寺 銘文)' 등을 토대로 해 볼 때 지금의 운천동 지역에는 많은 사찰이 몰려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 지역은 한때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곳으로 운천동 일대가 사찰 지역이니 그 사찰 앞을 흐르는 하천도 불교문화와 깊은 관계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에서 설득력을 지녀온 것이다. 그러나 무심천의 유래를 불교와 깊은 인연으로 보는 것은 지명의 생성과정이나 언어의 특성상 매우 타당성이 없다고 할 것이다. 무심천의 어원에 대한 견해를 다음 글에서 밝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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