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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1.30 14:10:38
  • 최종수정2025.01.30 14:10:38

신한서

전 옥천군 친환경 농축산과장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손꼽아 기다리던 그날이 왔다. 능월초 25회 늙은 아이들 해외 나들이 가는 날이다. 2023년 봄부터 전국에 흩어져 사는 동창들이 의기투합하여 오늘에 이른다. 매월 5만 원씩 입금하고 수시로 연락하느라 단톡방이 뜨거웠다. 2년 이란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오늘 출발하는 것이다.

대전.옥천 친구 일곱 명은 대전복합터미널에서 만났다. 옥천에서 출발하는 친구는 시골 종호 친구 아들이 직접 대전터미널까지 태워다 주었다. 인근 식당에서 순대국밥을 먹었다. 물론 소주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영하 10도에 가까운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여유 있게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벌써 몇 몇 친구들이 와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오후 5시 공항 1여객터미널에 한두 명씩 모여들었다. 순천에 사는 명수 친구는 폭설로 갑자기 비행기가 취소되어 간신히 KTX로 도착했다. 준비한 소주와 컵라면은 여러 사람들 가방에 분산 은폐했다. 짐을 붙이고 출국 준비에 들어갔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그렇게 복잡하진 않았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공항식당에서 설렁탕으로 만찬을 즐겼다. 양주로 목에 거하게 윤활유를 발랐다. 입에 착착 달라 붙는다. 분위기 한층 업 되었다. 초딩 동창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많이 모인것은 처음이다. 들뜬 마음을 안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운 좋게 비상구 창 옆에 자리를 잡았다. 여유 있는 공간과 시야가 좋았다. 발음도 잘되지 않는 코타키나발루로 향한다. 6시간 정도 걸린다. 조금 있으니, 기내식이 나온다. 와인도 화이트로 한잔하고 분위기를 잡았다. 기내식에 나오는 일회용 생수가 인근 금산군 추부면에서 생산된 것이라 반가웠다.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다음 날 새벽 1시, 코타키나발루 공항에 도착했다. 애나라는 현지 가이드가 "능월초 25회 동창 환영" 이란 플래카드를 들고 우리를 반긴다. 밤이 깊어 곧바로 숙소인 프로메네이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날 호텔 조식을 마치고, 시바 섬으로 출발했다. 맑은 물과 공기가 마음을 씻어준다. 바닷가에 펼쳐진 야자나무와 수상 가옥들이 열대지방임을 알려준다. 한국에서는 영하 10도가 넘는 추운 겨울이었다. 이곳 열대지방까지 오는 대는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겨울과 여름이 출렁다리 하나두고 마치 붙어있는 느낌이다. 시바 섬의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작열하는 태양에 두 팔을 벌려본다. 오랜만에 선글라스를 끼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칠순이 다된 늙은 아이들도 금방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오후에는 단체로 마사지를 받았다. 오랜만에 몸이 풀리듯 부드러워 졌다.

황금빛 노을이 붉은 파도위를 달리고 있다. 인근 식당으로 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야외 옥상에 자리를 잡았다. 삼겹살에 소주가 춤을 춘다. 각자 준비한 소주와 밑반찬들이 시골 전통시장처럼 쏟아져 나온다. "삼겹살 너에 묻는다, 소주가 왜 달콤하지?" 분위기가 더욱 달아오른다. 석양의 노을이 장관이다. 카메라에 담느라 분주하다. 중년의 가을 이삼십 대 젊은이들 모습이다. 누가 시킬 것도 없이 옆에 있는 노래방기기 앞으로 달려갔다. 신나는 노래에 춤사위들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손끝과 어깨춤이 나비 같다. 시간과 돈을 꾀 많이 투자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쉽지만 자제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주님이 부족한 친구들은 야시장으로 나갔다. 나머지 친구들은 내방으로 모였다. 침대를 옆으로 밀어붙이고 여행 가방을 탁자 삼아 소주가 춤을 춘다. 서로 살아온 날들, 가난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들, 우정과 사랑과 눈물이 파도처럼 방안에 넘쳐흐른다. 한 친구는 가난하여 중학교 갈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6학년 민병권 담임선생님이 가정방문까지 하여 부모를 설득하였다. 워낙 가정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한 상태였다. 담임선생님의 특별한 배려로 중학교 입학시험을 볼 수 있었다. 시험장 교실까지 들어와서 격려해 주셨다며 눈시울을 붉힌다. 평소 점잖아 말도 잘하지 않던 정희 친구가 농담을 한다. 경상도 남녀가 신혼여행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배꼽이 탈출하여 창밖으로 튀어 나갈 지경이다. "씹지도 않고 밥을 먹는 것"을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정말 재미있는 발음이 나온다. 지금도 가끔 혼자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동안 준비한 동창회 회고록에 대한 친구들의 관심과 반응이 예상보다 좋았다.

흔히들 여행은 준비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올 집이 있고 반겨주는 가족이 있어 더욱 좋다고 한다. 칠순을 바라보는 인생의 가을이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50년 전 코흘리개 추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늙은 아이들의 위대한 행위 예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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