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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서

전 옥천군 친환경 농축산과장

초등학교 동창 단톡방에 모바일 부고장이 떴다. 얼마 전 친구 어머니 장례식장에도 함께 다녀온 불알친구다. 믿어지지 않았다. 차라리 장난 문자였으면 좋겠다. 아내와 함께 장례식장으로 달려갔다. 친구의 영정사진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 솟아오르는 울음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놀라는 표정이다. 한참을 울고 나니 마음이 좀 가벼워졌다. 지난여름에도 고향 친구 한 놈이 먼저 갔다. 마음을 준비할 겨를도 없이 연달아 두 놈이 급하게 떠났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매일 조기축구를 즐기던 건강한 친구였다. 직장에서 연말 회식을 마치고 자정이 넘은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친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빈대떡 한쪽에 소주 한 잔하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그만 구토 몇 번 하더니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머나먼 길을 홀로 떠났다.

아침 일찍 화장장에 도착했다. 정문부터 영구차와 버스들이 밀려들고 있다. 영구차 속에서 한참 기다렸다. 순서가 돌아왔다. 아내와 자식들의 오열 속에 뜨거운 화로 속으로 친구의 관을 밀어 넣는다. 친구 이름 석 자 밑에 "소각 중"이란 문자등이 들어온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다. 초점 잃은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평생 살아온 친구의 이력서가 주마등처럼 한순간에 지나간다. 나는 가난하여 먹고 살기도 힘들었다. 친구는 외아들에 장남이라 누구보다 귀하게 자랐다. 어릴 때부터 보약을 대놓고 먹었다. 보약은 워낙 써서 어린이가 먹기에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엄마 몰래 보약을 대신 먹어주었다. 지금까지 내가 건강한 것은, 이때 보약을 많이 먹게 해준 친구 덕택이라 생각한다.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정말 보약 같은 친구다.

한 40분쯤 지나니 "소각 완료"라는 문자등이 들어온다. 10분 후에는 "냉각 중"이란 글자가 들어온다. 냉각 시간이 완료되면 분쇄된 뼛가루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나온다. 직원이 뼛가루 봉투를 상주에게 건네준다. 유족은 미리 준비한 항아리에 담아서 목에 걸고 공원묘지로 향한다. 멀쩡하던 친구가 금방 어디론가 사라졌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무리 가깝고 친한 사이라도 산 자에게 죽음의 사유나 내용을 전해주지 않는다. 우리 인간은 그저 죽을 뿐, 죽음을 경험할 수도 없다.

화장장에 다녀온 날부터 삶의 무게와 죽음의 가벼움을 안고 살고 있다.

죽음의 파도가 내 발끝 언저리에 달 듯 말 듯, 살얼음판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금방 펄펄하던 친구가 한 줌도 안 되는 뼛가루만 남기고 훌쩍 사라졌다.

친구가 남긴 한 줌의 흔적을 보면서 다시 한번 삶 자체가 한 조각 구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죽음은 스스로 받아들여 한다.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다. 천하를 통일하고 불로장생을 꿈꾸며 만리장성을 쌓았던 중국의 진시황제도, 권투선수 중 가장 위대한 무하마드 알리도, 미국의 억만장자 스티브 잡스도. 삼성의 이건희 회장도 고인이 되었다. 모든 사람은 죽음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 한번은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다.

부담 없이 가려면 미리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먼저 보건소에 가서 연명치료 각서나, 장기기증부터 신청해야겠다. 가벼운 유언도 생각해 두고, 건강보험이나 국민 세금 축내지 말고, 수의도 필요 없고 입던 옷 입고, 관도 되도록 중저가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물론 이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두 다리 멀쩡하게 걸을 수 있고, 친구들과 커피 한잔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금 여기가 바로 천국이요 무릉도원이다. 아직도 따스한 온기가 남아있는 친구의 유골 항아리를 어루만져본다. 평생 살아온 친구의 인생 이력서가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내려놓고 비우면서 남은 내 인생 이력서 빈칸을 그냥 그렇게 채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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