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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미국의 음악 명문 줄리어드의 강당에서 지휘 마스터클래스가 열리고 있다. 지휘자를 꿈꾸는 학생들이 당대 최고의 지휘자를 초청하여 가르침을 받는 자리다. 오늘 대표로 가르침을 받기로 한 남학생이 지휘봉을 잡고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다. 이 학생의 지휘를 별안간 멈춰 세우는 이는 그날의 마스터이자 베를린 필하모닉 최초의 여성 상임지휘자 '리디아 타르'다. 그녀는 스스로 '오케스트라의 시간을 시작하는 존재'라고 정의할 만큼 강한 에고를 가지고 있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쟁취한 인물답게 강력한 카리스마도 느껴진다. 리디아는 학생에게 연신 공격적인 질문을 던진다. 긴장한 학생은 다리를 떨기 시작한다. 리디아의 질문이 계속되고 학생은 나름대로 답하지만 아무래도 리디아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긴장이 높아질수록 학생의 다리가 더욱 심하게 떨린다. 리디아와 학생의 토론은 점점 격해지고, 그의 다리 떠는 모양새를 참기 어려웠던 리디아는 그의 허벅지를 눌러 제지한다.

위 내용은 영화 <타르>의 한 장면이다. 영화 초반부에 나왔던 위 장면은 영화 후반부 리디아의 위기와 맞물려 일종의 증거 역할을 하게 된다. 리디아와 남학생의 토론이 시작되자 당시 마스터클래스에 함께 참여했던 학생들이 조용히 휴대전화를 들어 촬영한 것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촬영된 영상은 다시 누군가에 의해 한곳으로 모여 편집된다. 편집된 영상에서는 격론의 맥락은 모두 잘리고 리디아가 남학생의 등과 다리를 터치하는 장면만 남아 있다. 얼굴 가까이 손가락을 튕겼던 행위는 카메라 각도에 의해 마치 얼굴에 주먹질하는 것 같은 장면으로 탈바꿈되었다. 이렇게 편집된 영상은 리디아를 학생을 성추행하고 폭행하는 악인으로 보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학생을 추행하고 폭행하는 악인인 채로 리디아의 영상은 SNS를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그러나 우리는 영화 초반에서 저 사건의 전체 맥락을 목격했다. 리디아의 다른 악행과 별개로 편집된 영상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진 기술은 19세기 초 실증주의 과학의 시대가 열리며 등장하여 이후 대중적으로 보급되었다. 초창기에는 사진기를 통해 찍히는 기계적 객관성에 주관적 개입이란 있을 수 없다고 믿었기에 사진이 보여주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 사실이고 진실이 되었다. 최첨단 기술이 발달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진적 진실'의 신화는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는 듯하다. 포토샵, 앱 등을 통해 손쉬운 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급한 순간에 증거를 남기기 위해 우리는 여전히 카메라를 들이밀지 않는가? 카메라를 통해 촬영된 결과물은 여전히 사람이나 사건, 또는 사물의 존재에 대한 어느 정도 객관적인 진실이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영상이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지금도 많은 사람이 알고리즘에 의해 제공된 영상을 시청하며 각자 자기만의 진실을 본다. 누구나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퍼뜨릴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수 초 내에 하나의 영상이 전 세계인들에게 공유될 수도 있는 세상이다. 그 영상은 진실된 것일 수도,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 확산 과정에서 영상 이미지가 편집될 것은 예상 가능하다. 이제 사진 한 장이면 그대로 '객관적 진실'로 인정되었던 시기는 지났다. 이제 영상 윤리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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