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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영국 연안도시의 한 영화관에서 일하게 된 첫날, 스티븐(마이클 워드 분)은 그곳에서 오래 일해온 힐러리(올리비아 콜먼 분)로부터 극장의 곳곳을 안내받는다. 매점을 거쳐 제1상영관과 영사실을 지나자 한구석에 '일반인 출입금지'표지판이 붙여진 문이 시야에 잡힌다. 스티븐이 호기심을 보이며 간절히 부탁하자, 망설임 끝에 힐러리는 오랜 시간 닫혀 있던 문을 열어준다. 힐러리와 스티븐의 발걸음을 따라 관객의 시선 역시 화려했던 시간을 짐작 너머로 둔 채 이제는 먼지 가득히 갇혀져 있는 공간들을 바라본다. 영화 <빛의 시네마>(2022)에서는 1980년대 초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축소되거나 감추어질 수밖에 없었던 영화관의 숨겨진 공간들에 빛을 비추어 '빛의 시네마'를 만들어나간다.

강원도 원주시에는 원주 아카데미극장이 있다.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처음 문을 열었다. 아카데미극장과 함께 출발했던 많은 단관극장들은 2005년 등장한 멀티플렉스에 밀려 연이어 문을 닫았다. 원주 아카데미극장도 그 무렵부터 상영을 멈추었다. 원주 아카데미극장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 중 하나다. 오래되었을 뿐 아니라, 처음 지어진 그대로 원형이 보존된 상태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객석이나 영사실, 매표소 등 아카데미극장 안의 공간들은 지역의 역사를 머금은 채 영화관의 면모를 지켜내고 있다. 최근 원주 아카데미극장의 철거와 관련된 논란이 뜨겁다. 원주시가 극장을 철거한 뒤 그 자리에 문화·예술 공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아카데미극장의 보존을 지지하는 원주 시민들은 철거가 아닌 보수와 보존을 통한 문화 공간 창출을 이야기하지만 이미 철거는 시작되었다.

극장 혹은 문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그 공간에서 영화나 전시를 관람하는 기능적 요소만을 기대하지 않는다. 극장이라는 공간은 역사적, 문화적, 그리고 장소적 차원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맥락에 맞게 공간을 이용하면서 그곳에 각자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렇듯 극장은 문화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공간인 동시에 공간에 대한 의미 부여와 해석이 발생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영화 관람 이외에도 그 공간이 지닌 다양한 의미들을 소비하거나 생산하고, 그곳에서 행하는 자신의 행위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극장을 이용한다. 그렇기에 원주 아카데미극장처럼 오랜 역사를 통해 많은 시민들의 이야기들을 간직한 공간은 그 자체로 장소적, 역사적, 문화적 의미가 충분하다.

영화가 상영되지 않는 극장이라니 무슨 쓸모가 있겠냐고 생각한다면 <빛의 시네마>를 추천한다. 이 영화는 극장이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기능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버려진' 공간을 통해 보여준다. 힐러리와 스티븐이 극장의 숨겨진 공간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의미를 생산해냄으로써 더 이상 그 공간은 버려진 공간이 아니게 된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역시 마찬가지다. 공간의 역사성과 문화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무조건적인 철거는 답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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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날 특집 인터뷰 - 윤희근 경찰청장

[충북일보] 충북 청주 출신 윤희근 23대 경찰청장은 신비스러운 인물이다. 윤석열 정부 이전만 해도 여러 간부 경찰 중 한명에 불과했다. 서울경찰청 정보1과장(총경)실에서 만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게 불과 5년 전 일이다. 이제는 내년 4월 총선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취임 1년을 맞았다. 더욱이 21일이 경찰의 날이다. 소회는. "경찰청장으로서 두 번째 맞는 경찰의 날인데, 작년과 달리 지난 1년간 많은 일이 있었기에 감회가 남다르다. 그간 국민체감약속 1·2호로 '악성사기', '마약범죄' 척결을 천명하여 국민을 근심케 했던 범죄를 신속히 해결하고,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건설현장 불법행위' 같은 관행적 불법행위에 원칙에 따른 엄정한 대응으로 법질서를 확립하는 등 각 분야에서 의미있는 변화가 만들어졌다. 내부적으로는 △공안직 수준 기본급 △복수직급제 등 숙원과제를 해결하며 여느 선진국과 같이 경찰 업무의 특수성과 가치를 인정받는 전환점을 만들었다는데 보람을 느낀다. 다만 이태원 참사, 흉기난동 등 국민의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들도 있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게 된 일흔여덟 번째 경찰의 날인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