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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영화 <더 웨일>의 주인공 찰리(브랜든 프레이저 분)는 초고도비만이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혹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거나 타인으로부터 상처받는 순간에 폭식한다. 찰리의 폭식은 음식에 대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징벌에 가깝다. 공격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어떤 사람들은 때로 자해를 통해 마음의 괴로움을 드러낸다. 세상에 대해서나 심지어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떠한 통제력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자기 몸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는 더 이상 삼킬 수 없어 게워낼 때까지 마치 자기 육신을 벌하려는 듯 빠른 속도로 음식을 욱여넣는다. 다음 날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환각과 같았던 전날 밤 폭식의 순간을 떠올리며, 다시 스스로에 대한 환멸과 수치심으로 좌절한다. 극 중 찰리와 같은 폭식증은 식이장애의 대표적 증상 중 하나다. 식이장애는 음식을 섭취하거나 거부하는 일종의 행동장애인데, 심리적, 사회적, 생물학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다. 이를테면 찰리와 같이 심리적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과하게 음식을 섭취하거나, '날씬한 몸'을 만들려는 과정에서 식이와 관련된 행동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최근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극단적 마름을 지향하는 유행이 논란이 된 적 있다. 이들은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을 보며 아름답다고 열광한다. 스스로 그러한 상태가 되기 위해 비정상적으로 굶거나, 먹고 토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등의 '프로 아나(pro-ana, 거식증)'를 지향하는 청소년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이러한 극단적 마름을 열망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SNS상에서 가장 예뻐 보이는 비주얼을 만들기 위해서다. 튼튼한 뼈와 살로 채워진 건강한 몸이 가장 아름답다고 어른들이 아무리 말해도 쉽게 설득되지 않는다. 어른들의 말씀과 달리 그동안 청소년들이 미디어를 통해 학습한 것은 '아름다운 몸=마름'이라는 공식이었기 때문이다. 마른 몸이 드러나는 사진들을 업로드하면 팔로워 수가 증가한다. 게시물을 업로드할 때마다 '좋아요'가 폭발하고, 댓글로 외모에 대한 찬사를 받는 것이 이들 또래에서는 의미 있는 사회적 인정이다.

외모와 관련한 강박을 느끼는 건 청소년만의 문제는 아니다. 성인들 사이에서도 얼굴, 몸매 등 외모와 관련된 평가가 일상화된 지 오래다. 요즘에는 소개팅 이전에 사진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외모를 확인한 후 만남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물론 외모가 마음에 들 경우에만 만남이 성사된다. '00상', '△△상' 등 특정 기업에서 선호하는 외모가 실제로 있다는 속설이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면서 '혹시나'하는 불안감에 적잖은 취업준비생들이 성형 수술 상담을 받았다고도 한다. 취업 면접 자리에서 외모에 대한 지적을 받고 성형을 고민하는 20대 청년의 사연이 뉴스에 방영되기도 하였다. 이쯤 되면 성형이나 다이어트 행위는 미(美)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스펙 쌓기로 해석하는 게 더욱 설득력 있을지도 모른다.

외모가 개인의 삶의 질을 좌우할 수 있는 자본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면 그 사회는 외모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존재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떠한가? 이 사회에서 선호하는 외모를 갖추면 소셜미디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플루언서가 될 수도 있고, 연애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도 있으며, 취업 시장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사회에서 '몸'은 이미 자본의 한 종류가 되었다. 외모중심적 사회에서는 날씬하고 예쁜 얼굴에 대한 열광과 동시에 그렇지 않은 외모에 대한 혐오 역시 강력하게 나타난다. 이런 문화적 압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외모에 대한 집착에 매몰된 개인만을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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