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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세명대 교양대학 부교수

한 번 본 영화를 반복해서 여러 번 보는 편은 아니지만, 어쩌다 봤던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이전에 볼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재미를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다시 본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스몰 타임 크룩스>(2000)가 그랬다. 이 영화는 전과자인 레이(우디 앨런 분)와 스트립댄서 출신인 프렌치(트레이시 울먼 분) 부부가 우연히 사업에 성공하여 막대한 부를 가지게 되면서 상류사회에 진입하려 애쓰지만 결국 좌절하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린다.

레이와 동료들은 은행 옆 가게에서부터 땅굴을 파고 들어가 은행 금고의 돈을 훔칠 계획을 세운다. 땅굴을 파는 동안 의심을 피할 목적으로 지상에서는 레이의 아내인 프렌치가 쿠키를 팔기로 한다. 땅굴은 엉뚱한 방향으로 뚫리고 경찰에 의해 발각되지만, 프렌치의 쿠키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방송에까지 소개되면서 결국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쿠키 사업이 크게 성공하고 1년 후, 레이와 프렌치는 호화로운 물건들로 장식된 넓은 아파트에서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프렌치는 파티에 초대한 상류층 손님들의 수준에 어울릴 수 있도록 고급 요리들을 준비하고 값비싼 장식물로 치장하지만, 그들끼리 프렌치의 취향이 얼마나 저급한지 헐뜯는 뒷말을 우연히 듣고 크게 실망한다. 그들의 이야기에 상처받은 프렌치는 문화 예술 다방면에 박식하고 교양 있어 보이는 미술상 데이빗(휴 그랜트 분)에게 "교양"을 가르쳐달라고 부탁한다. 영화는 레이와 프렌치의 '교양 없음'을 그들의 문화적 취향을 통해 묘사한다. 검정 턱시도로 성장한 상류층 남성들과 원색의 양복을 입은 레이의 옷차림이나, 은은한 컬러 드레스를 입은 상류층 여성과 형광색 드레스의 프렌치는 한눈에 비교된다. 핑거볼, 트러플 버섯 등 고급 요리에 대한 지식이나 매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로 '무조건 비싼 것'들로 '많이' 주는 게 좋은 거라는 프렌치의 모습이 코믹하게 재현된다. 이처럼 영화는 프렌치와 레이 부부가 상류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에 비해 너무나도 빈약한 문화자본으로부터 발생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상류층이 공고하게 쌓아 놓은 진입 장벽을 깨닫게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사회적 경쟁에서 투쟁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자본으로 보았다. 그는 화폐나 부동산처럼 계급 구조의 기본이 되는 경제자본과 더불어 경제자본 위에서 생성되거나 경제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모두 자본의 형태로 명명하면서 이 세 가지 자본이 계급을 재생산하는 진정한 매커니즘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취향, 매너, 지식 등 돈으로 구매할 수 없는 형태로 존재하여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문화자본을 매개로 한 권력 구조 유지를 강조했다. 영화에서 프렌치의 "교양은 돈으로 살 수 없잖아"라는 대사가 바로 그러한 점을 꼬집고 있다.

문화자본은 장기간의 투자와 교육, 경험 등을 통해 형성되며, 따라서 계층 간 문화자본은 상이하게 나타나게 된다. 상류계층은 그들끼리 상류층의 문화자본을 공유하며 다른 계층의 그것과 다르고 상류층의 문화가 우월하다는 '구별짓기'를 해왔다. 영화는 상류층의 문화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프렌치가 결국 사업에 실패함으로써 어쩔 수 없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자칫 허영에 가득 찬 인물들의 어리석은 일장춘몽으로 읽을 수도 있겠으나, 문화자본의 무서우리만치 높고 두터운 진입 장벽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종 코믹하게 그려진 이 영화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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