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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우석대 교수

지난 여름은 예민했고 고독했습니다. 바쁜 일 없이 딴청 부리는 날도 있었고, 종일 세상에 없는 자리에서 헤매던 날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낯선 사람을 따라 새벽까지 걸었던 적도 있었지요.

그런 저를 멀리서 묵묵히 안타까운 눈으로 지켜보셨을 겁니다.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새겨지도록 주먹을 꼭 쥐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간절함 덕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사히 가을과 함께 세상으로 돌아왔으니.

이번에 알았습니다. 우리는 지천명에도 자기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다는 걸.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했는데도 마음에 화롯불 같은 게 여전합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러더군요. 아직 열망이 커서 그런 거라고. 그런 게 늙어가는 거라고.

그렇게 조금 더 늙고 나니 어느덧 가을입니다. 어느 때보다 하늘은 높고 바람은 가볍습니다. 성미 급한 나무들은 서둘러 잎을 떨어뜨렸고, 계곡의 물소리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습니다.

당신도 이 계절을 잘 건너고 있지요?

어제는 혼자 가을맞이하러 들에 나갔습니다. 콤바인 한 대가 부지런하게 벼를 베고 있더군요. 영근 이삭을 떨어내고 남은 볏짚이 가지런하게 논바닥에 남았습니다. 이삭을 떨어낸 볏짚은 여름내 짊어졌던 삶의 고뇌를 훌훌 벗어버린 듯 홀가분하게 보였습니다. 언제부턴가 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줄기에 힘이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여문 이삭을 매달고 오늘까지 꿋꿋하게 버티고 서 있었을 자세를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가을은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는 계절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빈 손바닥을 비비며 오후 내내 걸었습니다. 세상 곳곳에 발자국을 남기는 일이 나를 조금씩 덜어내는 일인 것 같았습니다. 한나절 걷고 나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요?

요즘은 날도 일찍 저물어서 마음이 급해집니다. 집으로 돌아와 거실 불을 켜니 어둠이 후다닥 달아납니다. 불빛을 피해 도망간 어둠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런 심심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띵동, 하고 휴대폰이 울립니다.

문자메시지로 사진 한 장이 올라와 있습니다. 수십 년을 알고 지낸 친구가 보낸 가을 산 풍경입니다. 등산복을 입고 선글라스를 낀 친구 콧등에 땀방울이 보입니다. 갑자기 친구가 부러워졌습니다. 곧장 답장을 보냈지요. 부럽다고.

그러고 나서 혼자 저녁을 차려 먹었습니다. 나이 들면서 혼자 밥 먹는 일이 잦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서 부리나케 해치웠지만, 지금은 혼밥을 즐길 줄 압니다. 당신도 지금 따뜻한 저녁 식탁에 앉아 있겠지요?

밥을 먹고 나면 곧장 설거지합니다. 예전에는 한 끼쯤 묵혀두었는데, 이제는 말끔하게 가신 밥그릇이 좋아졌습니다. 그릇의 물기가 차근차근 말라가는 모습을 관찰한 적도 있었지요. 그렇게 시간이 야금야금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간이 넘치다 못해 이곳까지 도착한 모양입니다. 나는 지금 계절의 물기가 뽀득뽀득 말라가는 걸 봅니다. 물이 빠지면서 나뭇잎도 초록에 숨겨두었던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여름보다 투명해졌고 솔직해졌고 과감해졌습니다.

그게 제 마음의 본색이라고 한다면 용서하시렵니까? 가을이라서 조금 용기 내 보았습니다.

그럼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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