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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우석대 교수

"아, 또 시험이야."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모양이다. 중학생 아들이 걸핏하면 시험 스트레스를 하소연한다. 초등학교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시험이 여간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입술을 조그맣게 뭉쳐 내민 표정이 제법 심각했다. 빨리 어른이 되면 좋겠다는 아들은 사는 일이 시험의 연속이라는 걸 알까?

"시험에서 해방되고 싶다."

삼십 분 정도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아들이 책을 탁 덮고 일어섰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나는 '해방'이라는 말에 귀가 열렸다. 왜 그 말이 그토록 이물스럽게 다가왔을까? 나는 이내 그 이유를 알았다. 그건 해방이라는 말에 드리워진 역사적 무게였다.

알다시피 모든 말에는 필연적으로 역사적 문맥이 깔려 있다. 빨갱이, 좌익, 친일파, 사상, 혁명 같은 말들이 대표적이다. 그런 이유로 특정 단어를 선택하는 일은 역사적 관점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말에 거부감 있는 꼬리표가 붙고 나면 그 말은 슬그머니 사라진다. 언어도 시대에 따라 생성과 소멸을 겪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인민'이라는 말이 그렇고 '동무'라는 말이 그렇다.

가장 안타까운 말은 동무이다. 언제부턴가 동무라는 말이 일상에서 사라졌다.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들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아보자" 이런 동요를 불렀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어린 시절, 해가 뉘엿뉘엿할 때 집에 들어가서는 '동무들하고 놀고 왔다'고 늦은 귀가를 변명하곤 했다. '어깨동무'라는 잡지도 기억난다. 찾아보니 1967년부터 1987년까지 간행된 어린이 잡지다. 그러니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무라는 말이 일상에서 두루 쓰인 것이다.

해방도 이렇게 봉인된 말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중학생 아들이 해방이라는 말을 입에 올렸을 때 낯설었다. 하지만 그 말이 근래에 유행한 드라마 제목에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작년 봄이었단다. 모 방송사에서 방영한 드라마 제목이 '나의 해방일지'였다. 드라마에는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사는 젊은이들이 있고, 긴 세월을 나름의 무게를 감당해 온 노년의 부부가 나온다. 그들이 자기들 마음을 붙들고 있는 어둠에서 조금씩 해방되는 이야기라고 아들이 말해주었다. 드라마 인기에 편승해 '해방'이라는 말이 역사적 중압감에서 해방된 듯했다.

작년 가을에 출간된 한 권의 소설도 '해방일지'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평생 빨치산의 딸로 살아온 주인공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아버지의 진심을 알아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세 가지 해방을 경험했다. 첫째는 죽어서야 마침내 이념을 벗어버린 빨치산 아버지의 해방이었다. 빨갱이 딸이라는 딱지를 달고 살아온 화자가 아버지를 이해해가는 과정이 또 하나의 해방이었고, 빨갱이였던 아버지와 인연 혹은 악연으로 엮인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를 발견해가는 과정도 해방으로 이해되었다.

책을 찾아 초록색 표지에 인쇄된 '해방'이라는 말을 눈으로 오래 더듬었다. 눈을 들었을 때는 저만치 봄 숲의 연두가 보였다. 딱딱한 나무둥치에서 겨울을 난 생명이 연두의 잎으로 피어나고 있었다. 아니, 해방되는 중이었다. 연두의 부드러움이 단단한 목질을 끝내 이겨내고 있었다. 연두는 나무에서 온몸으로 해방되고 있었던 거다. 겨울이라는 시간으로부터. 자기를 가둔 나무껍질로부터.

좋다. 그럼 너도 해방이다. 나는 책을 팽개치고 휴대폰에 빠져 있는 아들을 모른 척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역할에서 내가 해방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는 휴대폰을 꺼내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동무의 이름을 눌렀다. 대뜸 '우리 해방되자'라고 하면 싱겁게 웃겠지? 그러면 함께 웃고는 이렇게 덧붙여야겠다. '동무야, 넌 얼마만큼 해방되었니? 숲 좀 봐라. 해방되기 딱 좋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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