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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1.04 14:41:49
  • 최종수정2017.01.04 18:11:13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 수필가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는 말이 충청북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풍광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제천과 충주와 단양의 경계에 위치한 청풍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청풍 호반에 각종 위락 시설이 들어서 전국적으로 이름난 관광지로서 충북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청풍을 알고 싶으면 꼭 가보아야 할 곳이 청풍의 역사를 재현해 놓은 청풍문화재단지이다. 청풍 문화재단지에는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 528)를 비롯하여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충북유형문화재 35),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충북유형문화재 20), 응청각(충북유형문화재 90), 청풍향교(충북유형문화재 64) 등 건축물 및 옛 도호부 시대의 부사나 군수의 송덕비, 선정비, 열녀문, 공덕비 등이 세워져 있어 화려한 옛 청풍의 위엄을 만날 수 있다.

청풍문화재단지를 둘러보고 북쪽 능선을 따라 올라가면 망월산성에 정자가 높다랗게 서있다. 이 산을 망월산이라고 하는데 고구려 시대에 청풍이 사열이현이었으므로 사열이산, 사열이산성이라는 명칭이 아직도 전해오고 있으며, 백제에서는 성열산이라 칭하여 지금도 그 이름이 전해온다. 이처럼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각축을 벌이던 지역이라서 땅의 주인이 자주 바뀌다보니 지명도 많은 수난을 겪어온 지역이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청풍 호수를 바라보노라니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절경이지만 물 속에 잠겨있는 청풍의 옛 역사와 수몰 이주민들의 애환과 옛 추억들이 아른거려 물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이 슬그머니 일어난다.

경제 발전과 국토의 개발로 인하여 지형이 급속히 변해가고 인구의 이동이 심하여 조상들의 얼과 우리말의 옛 흔적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는 보물과 같은 자연 지명들이 사라져가는 위기감으로 우리 충북지역의 지명을 하나씩 그 유래와 어원을 생각해보고 있지만, 청풍호수를 바라보면서 지명에 대한 연구와 보존이 더 시급한 곳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충북에는 충주댐과 대청댐이라는 대형 댐의 건설로 물 속에 수장된 지역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 이 지역들의 형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옛 모습과 정겨운 산과 들의 이름들이 아직은 이주한 사람들의 가슴속에 아련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머지않아 그 기억마져 잊혀지면 영원히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서 물속에 잠겨 버린 청풍의 옛 거리를 추억을 더듬어가면서 거닐어 보고자 한다.

청풍(淸風)이라는 지명은 한자의 의미로 보거나 입으로 소리내고 귀로 들리는 발음이 그렇게 시원하고 명쾌할 수가 없는 더할 나위없이 훌륭한 이름이라는 것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나라의 흥망성쇠에 따라 행정구역 편제와 그 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이 바뀌게 마련이지만 제천의 청풍이라는 곳은 변화가 너무도 심하여 오랫동안 이 지역을 터전으로 살아온 주민들로서는 혼란이 정말로 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청풍(淸風)은 본래 고구려 시대에 사열이현(沙熱伊縣)으로서 행적구역으로 현(縣)이 될 만큼 큰 고을이었던 것이다. 신라 제35대 경덕왕이 청풍(靑風)으로 고쳐 내제현(奈堤縣-제천)에 속하게 하면서 부침(浮沈)의 역사가 시작된다. 고려 제8대 현종 9년(1018)에 충주에 속하게 하였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고 충숙왕 4년에 이 고을의 청공(淸恭)이라는 스님이 왕사가 됨으로써 승격하여 지군사(知郡事)가 되었는데 조선 제 18대 현종 원년(1660)에 다시 승격하여 드디어 부(府)가 되었다가 제25대 고종 3년에 예(例)에 따라 군(郡)이 되어 읍내(邑內), 근남(近南), 원남(遠南), 원서(遠西), 근서(近西), 동면(東面), 북면(北面), 수하(水下)의 8개 면을 관할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1914년 일제에 의한 군면 폐합에 따라 제천군에 폐합되어 읍내(邑內), 근서(近西)를 합하여 비봉면(飛鳳面)으로, 근남(近南), 원남(遠南)을 합하여 수산면(水山面)으로, 동면(東面)과 북면(北面)을 합하여 금수면(錦繡面)으로, 원서(遠西)는 한수면(寒水面)으로, 수하(水下)는 그대로 수하면(水下面)이 됨으로서 청풍군이 풍비박산이 되고 청풍의 이름마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1917년 금수면은 제천군의 성산면과 합하여 금성면(錦城面)으로, 비봉면(飛鳳面)은 청풍면(淸風面)으로 고치면서 청풍이라는 이름이 청풍면으로 축소되어 이름만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1939년 10월 14일 충북령 제13호에 의하여 수하면을 폐지하여 남쪽의 6개리는 한수면에, 나머지 북쪽의 9개리는 청풍면에 병합되면서 해방후 40여년간 수몰 전의 청풍면이 존재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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