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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9.05 14:09:57
  • 최종수정2024.09.05 14:09:57

박주영

시인·수필가

노란 은행잎이 가을을 실어 나르던 어느 날, 우리집 마당 백일홍이 미소짓는 창가에 하얀 볕이 들면 기다림이 습관처럼 길들여진 나,

나는 주위를 서성이다가 긴 날을 홀로 우는 풀잎처럼 지루한 시간을 뒤척인다. 그런 내 뒷 모습이 한가롭게 외롭다.

훤~한 창문 앞 행길에 국화 꽃잎이 무서리에 떨어지고, 황새가 먼 하늘에서 내려와 가을비 사랑을 속삭일 듯한 하늘을 바라본다.

우주를 품은 초승 달이 만월이 되기까지 꽃 피우고 시듦은 하늘의 뜻이련만 누군가로 인해 마음 아팠던 이유도, 귓전에 개울 물 소리가 그리 애처롭게 들렸던 것도, 낙엽 털어낸 가지 끝에서 눈물짓던 그 애석함까지 따스한 기억속으로 긴~긴 하루를 덮는다.

바쁜 여름 농사 일 마무리 짓고 가을 걷이도 끝난 이때 실껏 쉬고 싶었는데, 허전함이 먼저 마음속에 자리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관적 내 생각의 틀 안에서 어설프게 시작한 농사 일, 그것은 인생의 새로운 도전이었다.

다음 날 아침이다. 일상탈출을 마음 먹는다. 희망 없는 상념들을 짐꾸러미처럼 던져버리고, 숱한 마음의 잔잔한 풍랑을 잠재우려 길을 나선다.

멀리 떠나올수록 더욱 뚜렷해지는 지난 기억너머로, 가을 햇살이 자곤자곤 내 마음을 엿듣는 한나절, 느긋한 시선으로 집안 일감을 뒤로 밀쳐 둔다. 하루를 소풍처럼 보내고 싶어 궤짝 카페를 찾았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 따라 호젓하게 걷다보니 길섶에 들국화가 서성이고, 억새가 여윈 어깨를 부딪친다. 이파리 떨어지는 길을 한적하게 걷다가 산길로 발길을 옮긴다. 가을이 어느새 무르익어 햇밤을 우수수 떨어뜨려 놓았다. 스쳐 지나던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쪽빛 하늘가에 잠자리떼가 한가롭게 노닐고 있다.

사람들은 외로움을 품고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허전한 마음 달래려 가끔 낯선 찻집을 찾기도한다. 헐거워진 신발 끝에 지난 추억을 찾아 문 두드리면 선량한 눈빛을 가진 카페 주인을 만날수 있다.

툇마루에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차창가에 등을 기대고 앉는다. 벽에 걸린 그림들의 액자마다 침묵의 퇴색된 흔적이 있고, 카푸치노 은은한 향기가 가득한 그곳에 자리잡은 도자기들이 저마다 모습으로 평온한 혼을 담는다. 이곳에서 나는 온몸으로 자연의 향기를 맡고있다.

커피잔 안에 이쁜 꽃잎을 그려 담아 오신 카페 주인은 한송이 꽃마음으로 향기를 전한다. 그에게서 넉넉한 가을의 기운이 느껴진다. 마른 국화향기를 걸러낸 도기 찾잔에 담긴 커피향이 감미롭다.

서울에서 미술을 전공하셨다던 남자 주인은 소탈하게 웃으며 같이 동행한 내 남편에게 말을 붙인다. 도심의 지붕을 넘고넘어 이곳 고향에 내려와 카페를 차린 이유를 내가 묻자 넌지시 건네는 말은, 도심에서는 잘 맞지 않는 인생의 퍼즐을 맞추려 날마다 일상을 헤집고 다녔지만, 그곳에서는 골목에서 들리는 음악조차 소음으로 들렸고, 스스로 만든 슬픈 꿈으로 심드렁해진 마음을 추스려야했단다.

고향 등진 회색빛 도심의 거리에서 베인 상처를 기억하고 있다면서, 때론 보이지 않는 가시에 찔려 빛도 없는 방황으로 만신창이 된 신발을 끌고다녔단다.

그런 허무한 상상을 펼쳤던 방황보다 한적한 이곳에서 드디어 참된 평안을 찾았다한다.

음성군 감곡면에 처음 카페를 차리던 날 시골 벌판에 무슨 사람들이 찾아 오겠냐며 모두 말렸다는데, 그런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와 나무를 짜 맞추기식으로 소품들을 직접 제작하고 만들기까지 우여곡절도 참 많았단다.

지금은 이곳 뿐아니라 서울에서 손님들이 찾아올 정도 소문이났다고한다. 그날도 평일인데 승용차가 줄을 잇고 카페안에서는 제각기 진지한 이야기 나누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는 가끔 그곳을 떠나 스스로 제작한 작은 켐핑카 버스를 타고 여행을 즐긴다며 웃음짓는 모습에서 삶의 진한 여유를 느꼈다.

꽃씨 안에 숨은 이파리가 피어나려면 대지의 온도가 사랑으로 따뜻해지기를 기다려야되 듯, 흔들림 없는 자연의 품에서 잃어버렸던 고향의 별을 찾은셈이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그곳에서는 저마다 지친 삶을 내려놓은 사람들의 모습이 한가롭다. 하늘을 떠돌던 구름도 이곳 카페에서 울려 퍼지는 낭만의 노래를 조금 훔쳐 듣다가 하얀 구절초 꽃무리에 웃음짓고, 그리움이 단풍으로 물드는 코발트 빛 하늘가에 철새들이 가을 햇살을 가르며 지나간다.

여름내 힘들었던 나의 시골살이, 오늘 이곳에서 몸도 마음도 힐링하고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다. 잘가시라 손 흔드는 주인의 미소에서 소박한 정이 흐른다.

먼 훗날 궤짝 카페 자작나무 숲에 첫눈이 내리면, 내 손자들 손 꼬~옥 잡고 다시 찾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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