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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10.22 16:49:59
  • 최종수정2020.10.22 16:49:59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필자가 20대 후반에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고등학교 때 가장 친구 중에 건설업에 종사하던 친구와 술을 마시면 너무나 서로 다른 세상에 산다는 것을 느꼈다. 이 친구는 예술을 추구하는 작은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마치 무술의 대가 아래서 수련생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박봉에 월화수목금금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추구하는 바도 같은 사람들이 모여 산수 좋은 곳의 작은 사무실에서 작업을 하며 살고 있었다. 바쁘지만 항상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며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었다. 나는 모 지방 의료원의 응급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밤이면 상습적으로 술에 취해서 폭력을 휘두르다 길에서 자다가 구급차에 실려 오거나, 싸우다 다쳐서 오거나, 파출소에서 자다가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때가 외환위기(IMF)사태로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되던 때라서 하루도 자살환자가 없던 날이 없었다. 목을 맨 20대, 제초제 마시고 이제 몇 시간이면 사망할 30대 가장, 물에서 건진 어느 아이의 엄마. 나의 일상을 이야기하면 그 친구는 '너는 세상을 너무 어둡게 보는 것아. 그리고 설마 그런 사람이 몇 명이나 있다고, 너무 과장되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라고 항상 이야기했다. 글쎄 나도 그랬으면 좋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외환위기를 관통하던 시절만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내가 만나는 진료실의 일상은 평화롭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이 친구가 결혼을 하고 생업을 위한 건설현장에 들어가면서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인허가를 위해 모셔야 하는 공무원, 회사의 상사를 모시고 단란하게 노래 부르며 양주를 마셔야 하는 술집들, 하청을 받기 위해 더 큰 회사 담당자를 접대하고 다시 하청을 주기 위해 접대를 받아야하고…… 이제 그 친구를 만나면 이 세상의 나쁜 놈들에게 뒤통수 맞은 이야기를 듣느라 밤을 새워야 한다.
 
 최고의 명당은 풍수지리가 아니라, 이웃이 결정한다고 한다. 좋은 인생이란 좋은 사람들만 만나 좋은 경험만 하고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럼 좋은 직업은 무엇일까? 남의 죄를 밝혀야하는 수사기관에 종사하거나 남의 죄를 판단하는 판사도 권위와 위세는 좋겠지만, 정신건강에는 몹시 좋지 않은 직업인 것 같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지만, 조금의 실수로 환자가 죽으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의사도 그렇다. 특히나 외국과는 달리 고의나 범죄목적으로 환자를 이용한 의료행위가 아닌데도 형사처벌을 하는 덕에 외과, 내과 등 생사를 결정하는 의사는 씨가 마른 한국에서는 더욱 해서는 안 될 직업이다. 그렇다고 자영업을 택하면 언제 망할지 모르는 무한경쟁에 복판에 있어야하고, 그럼 남는 것은 웬만큼 무능해도 잘리지 않는 공무원, 공기업 밖에는 남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들 공무원과 공기업 입사에 목을 맨다. 그런데 국민 대부분이 이런 직종을 추구하는 나라에 미래가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이 있고,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고용보장만 되는 성에 들어가는 것이 목표인 사회. 마치 좀비영화에서 안전한 성에 들어가기 위해 싸우는 세상 같다. 영화 초반에는 천국 같은 이상향의 성안은 사실은 용 같은 분들끼리 희희낙락하며 성벽(집값)을 높이고, 각종 스펙전형이나 깜깜이 블라인드 채용으로 열심히 노력한 자들의 사다리도 걷어차고, 자기들은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부모찬스를 쓰고도 당당히 남탓을 하는 더 살벌한 계급사회. 이렇게 성에서 자란 젊은이들은 더 무섭게 진화해 '법에 의하여' 성 밖으로 맘에 안드는 이들을 강제로 쫒아내는 좀비영화가 남의 세상 같지 않다. 20여 년 전엔 좀비 같은 외환위기 탓이라도 했었지만, 지금은 외계에서 온 좀비도 없는 우리끼리 만든 헬조선의 디스토피아라 더 우울하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어떤 직업으로 어디서 살아가라고 조언을 못하는 것이 나의 진심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아이들을 성 안에 넣을 능력도 없으니 쓸데없는 양심이나 찾으며 위안을 찾는 것이 글을 쓰며 발견한 내 자신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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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