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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8.13 15:57:36
  • 최종수정2020.08.13 15:57:35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지난주에 몇몇 언론에 어느 학교에 관련된 기사가 나왔는데 마침 필자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다. 앞뒤 사정이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학생의 욕설과 학부형이 폭력배와의 친분을 거론하며 여교사의 집과 차, 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다며 겁을 주었고, 이후 교사는 병가와 장기휴직을 들어갔다는 내용이다. 필자는 사건 자체보다 교육당국의 사후처리에 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해당학교에서 교권보호위원회가 열렸는데 사건을 직접 지켜본 교사는 제척시키고, 피해 교사도 참석시키지 않고 위원회를 개최하여 구성과 절차에 공정성이 결여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든다. 또한 교권침해의 여부만 학내 위원회에서 판단하고 처벌 수위는 교육청에서 결정해 온 규정이 올해부터 바뀌어 처벌까지 학내 위원회에서 결정한다고 한다. 문제는 이 처벌의 경중에 납득할 수 없어 교육청에 항고를 하여도 처벌 사항의 변경은 못한다는 규정이다. 2심 재판은 열리는데 1심 재판과 형량변경이 없다면 누가 재판을 다시 받겠는가? 여기에 이 학생이 학원폭력으로 조사 중인 사건에 관련하여 이 학부형이 지역학부모연합회장에게 청탁을 하려던 내용도 놀라웠다. 거리가 꽤 먼 지역회장을 만날 정도면 가까운 권력자들에겐 어떠할지 상상이 안되기 때문이다.

올 초에 방영된 '이태원 클라쓰'라는 웹툰에 기반을 둔 드라마가 생각난다. 드라마의 주인공, 박새로이는 다른 학생을 괴롭히고 교사도 무시하는 같은 반 장근수에게 반기를 들었지만, 돈과 권력을 쥐고 있는 장근수의 아버지 장대희의 힘으로 장근수의 모든 악행은 무마된다. 심지어 교통사고로 박새로이의 아버지를 죽이고도 돈으로 경찰도 매수하고 빠져나간다. 필자는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시작한 어머니의 가계의 단칸방에서 살며 학교를 다녔다. 한 지붕에 하나의 펌프와 화장실을 4가족이 사는 일제 강점기에 지은 가옥이었다. 공부를 그럭저럭 하여 무시당하지는 않고 학교를 다녔지만, 다른 학생과 주먹다짐이 일어나면 꼭 듣는 말이 '애비 없는 자식'이었다. '애비가 없는 자식이니 가정교육이…'는 양친부모 있는 친구의 부모님에게 교무실에서 항상 들어야하는 레파토리였다. 내 경험으로는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가난하거나 부모 없는 사람을 보는 시선은 절대 곱지 않으며, 반대로 돈이 많거나 힘이 있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용서받고 아름다우며 존중을 받는다. 가장 모순되는 것은 정의와 평등을 교과서로 가르치는 학교에서 제일 많은 부당함과 불평등을 학생으로서 경험했다는 것이다. 물론 훌륭하신 선생님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의 무관심과 방치만으로도 아이들은 고통 속에 산다. 나는 학교의 어두운 쪽을 다녀서인지, 밝은 면의 학교를 다닌 동창과 학창시절을 이야기하다보면 서로 다른 학교를 다닌 것 같다. 생활비를 벌기 위한 편의점 알바도 못 구하는 '(드라마)편의점 샛별이'의 샛별이 같은 청년들이 겪는 한국사회와 각종 스펙과 인맥으로 특목고와 명문대와 의과대학을 면접으로 들어가는 집안의 청년이 보는 한국사회는 전혀 다른 나라인 것처럼.

학원폭력이나 교권침해나 수업에 잠깐 얼굴을 보는 교사는 피하면 그만이지만 하루 종일 붙어 있는 학생은 다르다. 오죽하면 자살하는 학생들이 끊임없이 나오며, 졸업하고도 평생을 공포와 수치심에 살아가다가 복수하는 사건까지 발생하겠는가. 그런데 이렇게 드러나는 사건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런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지켜보는 아이들이 가지게 되는 사고방식, 인생관의 변화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세상에서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정치인과 교수, 그의 자녀들이 언론에 오르내리다 못해, 일상에서 우리 비슷한 경험하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은 정의로운 행동은 손해이며, 공정한 경쟁은 세상에 없으니 반칙과 불법으로 어떻게든 돈과 권력을 잡으면 된다는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바로잡아야하는 이유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길에 쓰러진 노파의 생사에 누구도 관심 없이 바삐 걸어가는 세태를 욕하기 전에 그렇게 인생을 살라고 행동으로 가르친 것은 우리 어른들이란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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