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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4.01 17:20:06
  • 최종수정2020.04.01 17:20:06

윤기윤

작가

"야, 앞뒤 오랜만이다!"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누군가 대뜸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다. 고개를 돌려보니 웬 낯선 얼굴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누구지?'하며 머릿속을 한참 뒤적이고 있는데 그가 다시 한 번 호탕한 목소리로 말한다.

"나야, 짱구! 박 짱구라고…"

짱구라고 하니, 어둔 방안에 스위치를 켠 것처럼 초등학교시절 기억의 램프에 불이 밝혀졌다. 주름지고, 흰 머리가 듬성듬성 보였지만 어린 시절 가깝게 지냈던, 짱구였다. 한참 만에 이름이 생각났지만, 기억을 먼저 소환해낸 일등공신은 별명 '짱구'였다. 그가 반갑게 부른 나의 학창시절 별명은'앞뒤'였다. 성(姓)과 이름의 끝자리가 같은 '윤'이니, 앞으로 불러도 뒤로 불러도 같은 이름이라 붙여진 별명이었다.

이름은 부모님에게 받지만, 별명은 친구들에게서 받는다. 별명을 붙일 때는 대개 그 사람의 특징이나, 성품, 어떤 사건을 계기로 붙여지게 된다. 그런 이유로 학창시절에 붙여지는 별명은 자신의 모습이 반영된 또 다른 이름인 셈이다. 대개는 짓궂은 명칭으로 생성되지만, 인위적인 아닌 가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참 모습일 것이다. 어린 시절의 별명이 있었기에 수십 년의 세월을 단박에 뛰어넘어 거리낌 없이 낯선 중년배의 어깨를 치게 했을 것이다.

이렇듯 별명은 이름에 비해, 그 생존기간은 짧지만, 훗날 추억의 선물처럼 옛 지인을 통해 불쑥 소환되기도 한다. 또한 별명은 한 개인의 특장점을 함축적으로 요약해 보여 준다. 특히 바둑기사들의 별명은 한 단어에 그 사람의 세계가 녹아 있어 흥미롭다.

바둑 기사들의 별명은 주로 그 사람의 기풍(棋風)을 보고 동료 기사나, 기자들에 의해 붙여졌다. 우리가 잘 아는 바둑기사 조치훈의 별명은 '폭파전문가'였다. 상대편 진영으로 혈혈단신 뛰어 들어 적의 진영을 부수고 살아남아 승리를 쟁취하는 그의 기풍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어록 중'바둑을 둘 때, 목숨을 걸고 둔다'라는 말에 걸맞은 별명을 얻은 셈이다.

일본의 바둑기사 오다케(大竹)의 별명은'반상의 미학(美學)'이다. 대국(對局)에서 지더라도 모양이 좋지 않은 행마는 결코 시도하지 않는다. 그만큼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실제로 오타케 바둑의 모양은 물 흐르듯 조화로운 형태로 유명하다. 지금 한국이나, 중국의 바둑기사들이 두는 실리적인 형태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아무리 모양이 사나워도 이기는 수라고 판단되면 두 말 없이 결행하는 것이 당연한 세태이기 때문이다.

중국계 기사인 명인(名人) 임해봉의 별명은 '이중허리'이다. 금방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여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지닌 그의 기풍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일본의 바둑계를 풍미했던 사까다(坂田)의 별명은 '면도날'이었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수읽기와 결정력을 표현한 것이다. 공격적인 기풍으로 대마를 잘 포획했던 가토(加藤)는 '대마킬러'로 명명되었고, 정확한 계산능력을 소유한 이시다(石田)의 별명은 '컴퓨터'였다. 변의 집보다 광활한 미지의 영역이었던 중앙을 중시했던 다케미아(武宮)에게는 '우주류(宇宙流)'라는 멋진 별명이 붙여졌다.

국내기사 이세돌은 이름과 실력이 합쳐져서 '쎈돌'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이창호는 돌부처다. 어린 나이에도 흔들림 없이 바둑을 두는 모습에서 세파를 초월한 부처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최철한의 별명은 '독사'다. 수읽기가 강해서 한 번 승기를 잡으면 집요하게 상대편을 물고 늘어져 끝내 항복을 받아내다 보니 붙은 별명이다. 바둑의 황제로 명성을 날리던 조훈현의 별명은 '제비'다. 물 찬 제비처럼 가볍게 행마(行馬)한다는 의미다.

중국 명대의 장편소설 수호지(水湖志)에도 108명의 호걸이 등장하는데, 그들의 이름 앞에도 별명이 붙는다. 양산박을 이끄는 수장인 송강의 별명은 급시우(及時雨)다. 가뭄에 때를 맞춰 내리는 비라는 의미니, 송강의 어진 성품을 잘 보여주는 별명이었다.

이처럼 별명에는 그 사람의 성향과 모습이 담겨 있다. 치기 어린 시절의 별명은 추억의 시간이 발효되어 친근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반면 어른으로 성장해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에는 어떤 별명이 다시 붙여질 수 있을까 가만히 돌이켜 보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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