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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2.05 17:21:38
  • 최종수정2020.02.05 17:21:38

윤기윤

작가

얼마 전 다녀온 터키 여행의 가이드는 장씨 성을 가진 스물일곱의 순박한 청년이었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좀 어설펐지만, 자신의 목표와 가치관은 고객을 오직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하는 말에는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옵션 강요도, 쇼핑센터 직전의 물건 홍보도 없었다. 그런데 여행지 설명보다는 긴 시간의 이동으로 피곤했는지 맨 앞자리에서 졸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남부 도시 안탈리아에서 파묵칼레로 이동할 때였다. 목적지에 거의 다 와가니 제법 큰 도시가 나타났다. 그때 잠에서 퍼뜩 깬 가이드가 갑자기 설명을 시작했다. 뒷자리에서 슬쩍 넘겨다보니 안내 책자를 읽고 있는 참이었다.

"이 도시는 인구 500명이며…." 우리 일행은 순간 의아하여 창밖을 목을 빼고 바라보았다. 청주보다도 제법 큰 도시였다. 500명밖에 안 산다고? 버스에서 내려 우리는 다시 가이드에게 물었다.

"한눈에 봐도 인구 50만은 되겠던데요·"

당황한 장가이드는 다른 일행의 나이 지긋한 가이드에게 허겁지겁 다녀오더니 이렇게 정정했다.

"죄송합니다. 도시 인구가 5억이랍니다."

"네?"

우리는 그의 대답에 더 놀랐다. 일행 중 한 사람이 웃으며 말했다.

"터키 전체 인구가 8천만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한 도시 인구가…."

순간 폭소가 터졌고, 가이드는 얼굴이 벌개져서 뒷머리만 긁었다.

여행을 제대로 한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소위'패키지여행'이란 참다운 여행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텔레비전의 한 여행 예능프로그램으로 인해 그런 인식이 다소 불식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행사 단체 모객으로 움직이는 패키지여행은 여행 좀 한다는 이들에게는 우습게 여겨져 온 것이 또한 사실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허겁지겁 밥을 먹고 정해준 동선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며, 때로는 쇼핑센터에 억지로 끌려가 물건을 사지 않을 수밖에 없을 때 특히 자조적인 심정이 되기도 한다.

한번은 아이들 중고등학교 시절 북경으로 패키지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날씨도 좋았고 유명한 곳은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돌아볼 수 있어 뿌듯했다. 다녀와서 큰애한테 가장 좋았던 것을 물으니 옵션 여행 때 우리 가족만 선택 관광을 하지 않고 바깥 거리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거리에서 파는 호떡과 현지 특유의 음식을 사먹은 것이라고 했다. 사실 거리에 특별한 볼거리도 없었고 좀 어슬렁거리다가 우리끼리 현지 노점에서 호떡 사먹은 것과 중국 차 한 잔 마신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이 만리장성과 자금성의 감상보다 거리의 호떡 이야기를 한 것이 나는 단박에 이해되었다.

그럼에도 나이 든 자의 변명인지 모르지만 패키지여행의 장점도 꽤 많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효율적인 일정 등이 그것이다. 여행의 체험을 깊이 내면화할 수 있는 기회는 다소 부족하겠지만, 수박 겉핥기식일지언정 부지런히 다닐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지를 잘 아는 가이드와의 만남도 색다른 재미가 된다. 그동안 내가 만난 가이드들은 공교롭게도 20대의 젊은이가 많았다. 내 아들과 비슷한 또래여서인지 더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 연해주 지방을 갔을 때 가이드는 스물 한 살의 하바롭스크 철도 대학의 한국 국비 유학생이었다. 그는 버스 이동시 편모슬하로 사정이 있어 보육원에서 자랐고, 이제는 가이드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한국의 동생들에게 생활비를 보탠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레 들려주었다. 그 젊은이는 학교를 마치면 더 큰 세계를 경험해 보고 싶다며 유럽에 가서 몇 년간 가이드 생활을 더 지속해 보고 싶다고 하였다. 일행 중 학생들이 유달리 많아서 그랬는지 그는"여러분도 스마트폰과 미디어의 세계에만 갇혀 있지 말고 직접 세계를 누벼 보세요."라고 말했다. 보다 크고 넓은 세계를 책이나 영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부딪혀 느껴보라는 의미였다.

동유럽에 갔을 때는 스물 셋의 청년이 가이드로 나왔다. 한국에만 있으면 취업이 어려울 것 같아 어린 나이에 헝가리로 일자리를 찾으러 왔다고 했다. 참 대견해 보였다. 작년에 부다페스트 유람선 사고 시에는 해당 여행사에서 일했던 그 청년이 걱정되어 신문을 통해 사고명단을 꼼꼼히 살펴보기도 했다.

패키지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이국의 풍경과 다양한 음식의 맛 그리고 저마다 다채로운 삶의 모습을 품고 있는 가이드와 함께 하는 순간들도, 여행에서 얻는 특별한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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