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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우

청주 단재초 교사

해방 이후 모든 학생과 교사가 개학을 이렇게도 기다리던 때는 없었다. 재작년 여름 충청권을 관통했던 태풍 솔릭도 겨우 하루만 학생의 발목을 잡았을 뿐이다. 발목이 3주째 잡히자 작년에 개교한 단재초등학교는 23일부터 교과서를 배부하기로 했다. 월화는 드라이브스루 방식으로, 수목은 워킹스루 방식이다. 예약자에 한하여 나누어주기는 하지만 모든 학부모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 개학이 3주가 미루어져도 왜 찾는 사람이 많지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는 왜 교과서를 나누어 주려 하는가?

4차 혁명의 용어를 창안한 슈밥과 한국의 교육 현실을 비판한 토플러의 말이 회자되기 전에도 지식은 학교에서 중시되지 않았다. 교육이 다루어야 할 핵심이 지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학교 내부에 없었다. 지식을 다루는 독서교육보다는 영상교육이 더 효율적이고 대세라고 주장한다. 활자를 영상으로 대체할수록 학생의 역량이 커진다고 믿기 때문에 독해하는 과정에서 뇌가 더 활성화된다는 이론도 쉽게 무시를 해버린다. 도서관의 책을 활용하여 교육 프로그램을 짜는 문제로 동료 교사와 합의점을 찾기도 쉽지가 않다. 영양교사보다 사서교사가 적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작년에 한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물건 값을 계산할 수만 있으면 되니까 원의 넓이를 구하는 방법을 굳이 정확히 알 필요는 없지 않나요?' 수학을 배우면 학생의 사고력이 증진 될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 물건을 주고받으려고 굳이 수학을 배울 필요는 없다는 말로 대신했다. 원리를 이해해야 하는 수학도 학생들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에서 신청한 체험학습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부모도 늘고 있다. 책 한권을 제대로 읽지 못해도 분수의 계산을 하지 못해도 크게 신경쓰려하지 않는다. 기초학력을 채우려는 의지가 부족한 학생과 학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달가워하지 않는 부모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지식을 언제든지 배울 수 있고 책을 직접 읽지 않아도 읽은 척 해주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지식은 인터넷과 학원에서 언제든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할수록 지식을 배우는 적기(適期)도 사라졌다. 충북 교육청이 2015년 충청권 대학 교수를 통해 '미래 학력'을 제시할 때만 해도 기초학력은 언급되지 않았다. 규범적으로 지향해야 할 역량을 나열했을 뿐이다. 학교도 유별나게 중시하지 않는다. 지식의 이해와 적용을 가늠하는 서술평가가 내신을 결정하지 않으며, 수행평가에 대한 중요성이 개학 전에 작성되는 학교교육계획 안에 담겨있지도 않다. 학생이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다고 특별히 격려를 해주지도 않는다. 그러면 역량을 키우기 위해 교사는 무엇을 하는가? 세 가지는 확실하다. 학생의 역량을 강조할수록 교사의 노동 강도는 줄어들었지만 더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 말을 많이 하거나 칠판에 많이 쓰지도 않으며 열심히 듣는 데에 에너지를 쏟는다는 것, 교사의 역량을 증대할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기반을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년 3월만큼은 한국의 의료계가 어벤져스가 되었다.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지독하게 지식을 암기했던 의료계가 온 세계에 보여준 창의성과 도덕성을 보라. 대구 현장으로 자진해서 달려가고 창의적 진료 방식을 도입한 그들이 바로 입시위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마라. 창의성과 도덕성은, 자신이 이해하고 암기한 지식이 절실한 문제 상황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평소에 쌓인 지식이 없다면, 기초 지식을 검색하면서 통찰을 얻을 수는 없다.

지난 23일부터 나누어주는 교과서는 창의성과 도덕성이 녹아든 지식 상자이다. 개교를 하자마자 교사와 학생이 하나씩 꺼내면서 지혜와 배려를 나누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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