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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하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산자 김정호 만큼 유명한 사람은 없다. 어떤 신화를 만들기 위해 한반도를 빠짐없이 다니며 지도를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그러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도 많다. 교통이 지금과 다르므로 많은 시간과 수고로 모든 길과 지역을 다니기는 불가능했다는 것이 이유이다. 1804년 황해도 토산에서 태어난 김정호는 지도에 필요한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지도 제작에 참여했다는 기록을 본다면 김정호는 몰락한 양반이라 부르는 잔반(殘班)이나 중인 계급의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 양반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부유하지 못하거나 성균관 진사가 되지 못하는 양반을 잔반이라 불렀는데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선비를 숭상하고 장사하는 일을 아래로 여겨 양반은 농사는커녕 장사조차도 맘 놓고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양반은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도 양반이 남 체면을 덜 타고 집안에서 노동하며 돈벌이할 수 있는 일이 자리 짜기였다. 영조 때 선비 김낙행은 일은 안 하고 글공부하는데 별다른 성과를 못 만들어 내자 아내에게 바가지를 긁히게 된다. 아내가 일하라며 자리 짜는 법을 가르쳐주자 할 수 없이 자리를 짜게 되는데 차츰 자리 짜는 일에 재미가 생겨 평생 자리 짜는 일을 하겠다는 선언까지 하게 되었고, '직적설'이라는 자리 짜는 다섯 가지 이로움에 대해 글로 정리하기까지 했다.

1. 자리 짜기는 노동하기에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

2. 집 밖으로 공연히 나들이하는 일이 줄어든다.

3. 무더운 여름날 졸음을 잊을 수 있다.

4. 공연한 근심거리에 마음 쓰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5. 잘 짠 자리는 늙으신 어머니께 올릴 수 있고, 좀 거친 것은 아내나 아이가 쓸 수 있고, 또 어린 계집종에게 주어 흙바닥에서 자는 것을 면해 준다. 그리고 남는 것이 있으면 살림살이가 딱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게 어디 있는가.

양반도 결국 사람이라 먹고 사는 문제 해결이 중요했고 그런 문제는 실용주의 학문을 발전시켰다. 김정희는 지리를 통해 실용주의적인 접근을 한 사람이었다. 1834년 이전부터 동여편고(東輿便攷) 2책을 편찬하고 청구도(靑邱圖) 2책을 편찬했고 동여도지(東輿圖志) 22책을 편찬했다. 그중 대동여지도는 김정희 역작이었다. 대동여지도에 기록된 모든 곳을 직접 다니긴 어려웠다면 참고를 한 것이 있을 것인데, 이는 당시 해당 지역의 관찬 지도와 '가장지도'(家藏地圖)를 참고하였다고 생각된다. 가장지도는 지역 유력집안에서 소유의 임야나 농경지를 표시하는 지도로 유력집안의 재산을 나누는 근거이므로 산이나 강 등에 정확한 측량을 하려 노력했고 그런 노력의 지도가 김정호의 참고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김정희의 지도에는 여러 문헌을 연구하고 이를 집대성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지도가 땅의 모양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지리와 역참, 봉수, 산성 등 다양한 기록도 남겼다. 지도유설(地圖類說) 김정호의 기록에 의하면,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국방상의 요충지를 잘 알아야 하고, 재물과 세금이 나오는 곳과 군사를 모을 수 있는 원천을 잘 알아야 하며, 여행과 왕래를 위해 지리를 잘 알아야 하므로 지도를 제작한다고 하였다. 또 세상이 어지러우면 쳐들어오는 적을 막고 사나운 무리를 제거하는 데 지도가 쓰이고, 시절이 평화로우면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데 지도가 소용된다고 하였다.

지도의 효능은 국가를 부흥하게 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기초 자료라는 것을 말해준다. 삶도 더 높은 곳에서 본다면 먼 미래까지 생각하게 할 것이다. 아웅다웅하며 눈앞의 현실에 울긋불긋한 것에 반성을 주는 것이 지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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