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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물이 꼭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큰 도시는 상수사용이 가능한 강을 끼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청주의 도시를 관통하는 천은 무심천이다. 길이가 약 34km나 되고 금강의 지류 중 2번으로 분류될 만큼 대접을 받는 천이다. 예전엔 인근의 평야보다 천이 높아 청주시내에 자주 수해를 끼쳤고 정비를 통해 지금처럼 천이 낮아졌다. 그러다보니 천과 연결된 옛 건축물들이나 주택들은 하천 상승으로 새로운 도시정비에 따라 매몰되거나 사라졌다. 강, 하천과 산은 사람들이 주거하는 환경을 만들어낸다. 무심천정비 전에는 대다수 생산 활동이 농업이었고, 농사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주변의 강, 하천이었기에 무심천의 높이가 낮아지는 것은 도시 전반의 생활환경이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심천은 고려시대에는 심천으로 불리었고 조선시대에는 석교, 대교천으로 불리우다 1923년 이후부터 무심천으로 불렸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석교(石橋), 대교(大橋)의 뜻으로 보면 큰 돌다리가 하천에 있었고 그것으로 불릴 정도면 역사적, 문화적으로 중요한 다리였다는 것을 상징한다. 현재 청주 상당구의 석교동 명칭도 이 석교의 영향이다. 석교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정진원 앞 다리라고 하여 대교라고 하였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남석교로 명명하였다.(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잦은 범람으로 하천재방을 높이고 하천을 깊게 파면서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졌는데 청주는 둑의 높이에 맞도록 매립을 하였다. 도시를 높게 만든 것이다. 그 덕에 남석교는 청주도시 아래에 묻혀있다. 남석교는 현재 육거리 시장아래에 묻혀있는데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돌다리로 아직도 명성이 있다. 남석교는 신라의 박혁거세의 건국과 같은 기원전57년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다리로 구전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건립에 대한 다양한 설이 있으나, 역사기록을 근거로 짜맞추어 본다면 다리의 교두에 세워져있던 '고려견' 조각상의 모습으로 고려시대의 다리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당시 있었던 '고려견'은 매몰전 총 4개로 1개는 도지사의 관사에, 충북대학교박물관에 1개가 있고 2개는 청주대학교 내의 용암사에 옮겨져 있다.

무심천 지명의 유래는 정확치는 않다. 그러나 지명은 여러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기원과 시대 상황이 모두 녹아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무심천 지명의 유래를 아이와 관계있다는 설로 정리되어있다. "청주 무심천변에 오두막집을 짓고 다섯 살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 여인이 있었다. 집 뒤로 시냇물이 흐르고 그 천을 건너는 통나무다리가 있는 집이었다. 어느 날 행자승이 찾아와 여인은 아들의 돌봄을 부탁하며 일보러 나갔다. 아이를 돌보던 행자승이 깜빡 잠들다 깨었을 때 돌보던 아이가 주검이 되었다. 행자승이 잠든 사이 아이가 통나무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던 것이었다. 여인은 아이를 보내고 삭발한 후 산으로 들어갔다. 이 소식을 인근 사찰에 전해지자 승려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며 아이의 행복을 빌기로 하였다. 이 같은 사연을 알 리 없이 무심히 흐르는 이 냇물을 사람들은 무심천이라 부르게 되었다."(위키백과)

다른 이야기는 무심천은 한국의 여느 도시에 있는 강, 천과 달리 물줄기가 북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의 보통 강, 천은 동, 서, 남으로 흐르지만 북으로 흐르는 무심천은 한양방향으로 거슬러 오른다고 하여 역모를 일으키거나 중앙집권에 반대하려는 성향이 생길 수 있다고 하여, 천의 이름을 아무런 마음을 갖지 못하거나, 욕심을 비우라는 뜻으로 무심이란 명칭을 사용했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다.

지역문화에는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지명 속에 묻어 놓았다. 지명은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만들어 지기도 하지만, 불리기까지는 다수의 동의를 얻어낸 것이다. 내가 사는 동네의 지명 속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문화적 원형이 있다. 스스로 주변을 돌아보고 관심을 가질 때 일상의 공간도 낙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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