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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객원 논설위원

"한국인은 레밍과 같다."

전두환이 육군 대장으로 진급한 다음날인 1980년 8월 8일, 주한미군사령관이던 '존 위컴'이 LA 타임즈의 샘 제임스 기자와 AP통신의 테리 앤더슨 기자를 만난 인터뷰 자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위컴은 전두환이 한국의 대통령이 될 것 같다며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레밍 떼처럼 신군부에 줄을 서고 있다고 했다. 위컴의 발언은 일신의 안위에 급급해 눈치를 보며 전두환을 추종하는 많은 한국인들에 대한 실망과 비판이었다.

위컴의 발언으로 익숙해진 나그네 쥐 '레밍'이 37년 만에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예상치 못한 폭우로 최악의 수해가 발생한 지역구를 나몰라라하고 유럽 연수를 떠나 국민의 공적인 된 충북지역 도의원의 망언 때문이다.

수해로 초토화된 지역과 주민보다 도비로 즐기는 외유성 연수가 더 중요했던 부적절한 행태를 지적하자 김학철 도의원은 방송사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세월호부터 그렇고, 국민이 이상한, 제가 봤을 때는 뭐 레밍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집단 행동하는 설치류 있잖아요"라며 역정을 냈다.

생각 없는 표현으로 파문을 일으킨 김학철 의원은 지난 20일 즉시 귀국한 동료 의원 2명보다 이틀 늦은 22일 귀국했다. 비행기 표를 구하지 못해 귀국이 늦었을 테지만, 한편에선 예정된 일정을 일부 소화하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억측의 목소리도 들린다. 밉상으로 찍힌 증거다.

취재진들로 아수라장인 공항 입국장에서 김 의원은 먼저 '레밍'발언에 대해 변명했다. "전화 인터뷰를 했던 해당 기자가 레밍에 대한 단어를 몰라서 설명하다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일종의 함정 질문에 제가 빠진 것 같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요해가 안 되는 내용이다. 레밍을 모른다며 기자의 무지를 타박하는 것도 우습고, 무엇을 의도했으며 또 의도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인지 이해가 어려워 당황스럽다. 함정질문에 빠졌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기자가 고의로 망발을 유도했다는 말인가. 한국말에 서툰 외국인이 하는 말처럼 어설픈 횡설수설이다.

레밍(lemming)은 쥐의 일종이다. 몇 년마다 크게 증식하여 이동하므로 나그네쥐라고 불리는데, 우리말보다 유명 인사들 덕분에 언론에 노출된 '레밍'이라는 이름이 귀에 익다.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툰드라 지역에 서식하며 덩치가 아담하다.

레밍은 개체수가 폭발적으로 불어나다가 갑자기 소수만 남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수년마다 한 번씩 크게 불어나면 무리지어 다른 땅을 찾아 떠난다. 바다에 뛰어들어 단체로 익사하는 특이한 행동으로 인해 인간처럼 자살하는 동물로 알려졌으나 집단자살은 오해였다는 점이 연구 관찰 결과 밝혀졌다.

심한 근시인 레밍이 바다를 작은 강으로 잘못 알고 수영해서 건너려다 탈진해서 익사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위컴의 레밍론은 앞서가는 쥐들을 무조건 따라가다 줄줄이 물에 뛰어드는 레밍의 습성을 군중심리에 비유한 것이었다.

대중에 노출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대표적인 직업이 정치인이다. 그래서 욕을 먹더라도 매스컴에 자꾸 떠주길 바란다고 한다. 그렇다면 비상사태에 유럽 연수를 떠났던 도의원들은 충분히 목적을 이루었다. 더구나 레밍발언으로 전국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김학철 의원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셈이다.

대중에게 일거수일투족이 노출되는지라 정신건강이 염려되지만 정치인은 수명도 길다. 늘상 욕을 먹어서 오래 산다는 설도 있다. 대체적으로 주위에서 비난받는 사람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말이든 행동이든 하고 싶은 것을 참지 않는다. 문제는 그런 사람의 행동을 곁에서 보고 듣는 사람이 스트레스로 단명 한다는 점이다.

저하고 싶은 대로 지껄이고 행동하는 꼴을 보다 전 국민이 몸져눕게 될까 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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