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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영의 '음악이 흐르는 수필' - "순간순간 빛을 타고"

핸리 클래이 워크: 할아버지 시계

  • 웹출고시간2025.02.06 15:34:43
  • 최종수정2025.02.06 15:34:43

김숙영

수필가·음악인

재활용품 모으는 곳으로 내려왔다. 아파트 관리실에서 주민을 위해 준비해 놓았다. 집에서 가지고 내려온 물건을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그 곳에 누워있는 큰 괘종시계가 보인다. 나무 조각이 되어있는, 오랜 세월이 그려지는 시계였다. 버려진 시계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둥근 시계추가 노란 금속으로 세워 놓으면 사용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집 거실에 있던 작은 괘종시계도 뻐꾸기 소리를 내며 가족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어느 날 완전히 고장이 나서 수선할 수 없어 시청에서 발부하는 폐기물 스티커를 안고 버려졌다. 내 눈에 들어온 큰 괘종시계를 보며 <할아버지 시계>라는 음악이 떠오른다. 재깍재깍 시계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할아버지 시계(Grand father's clock)는 헨리 클레이 워크(Henry Clay work 1832-1884)가 발표한 미국의 대중가요이다. My Grand father's old clock- 할아버지 낡은 시계 또는 짧게 할아버지 시계라고 정겹게 부른다.
이야기를 펼쳐본다. 미국 작곡가 1875년 헨리 워크가 영국으로 여행하던 중에 요크셔 피서 브리지에 있는 조지 호텔에 머물렀다. 이 호텔은 제킨스 형제들이 그 옛날부터 운영하고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된 큰 형이 태어날 때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시계라고 한다. 90년간 수선하며 그와 같이 지냈다. 큰아들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부터 영원히 멈추었다고 한다. 이 일화를 들으며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도 든다. 그 후 조지 호텔에 들어가면 오래된 할아버지 시계가 잘 보이는 앞자리를 차지하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고 헨리는 미국으로 돌아와 1876년 '할아버지 시계'를 작곡하였다. 그 후 My Grandfather's clock 발표 당시 100만 부 넘게 팔린 노래이므로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여러 버전으로 번역되고 리메이크 (remake) 하고 있다. 내용은 할아버지가 태어날 때 선물 받은 괘종시계가 90년 세월 동안 할아버지 곁에서 친구가 되었다. 할아버지가 운명하심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멈추었다는 사연이 가락으로 만들어졌다.

이 곡은 초등 음악, 중등 음악 교과서에 가락이 수록되어 있다. 반복되는 선율이 여러 번 나온다. 노랫말과 선율이 약간의 슬픔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중간쯤 느리고 멈추는 부분이 나타나는데 끝난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친한 친구로 곁에 있던 할아버지를 떠 올리는 부분으로 특별하다. 할아버지 임종과 함께 세상과 이별을 한 키다리 시계이리라. 학원에서는 칼림바 악기로 초등 저학년부터 이 곡을 재미있게 연주한다. 물론 학교 수업을 위해 피아노는 물론 리코더로 연주하는 소리도 울려 퍼진다.

◇노랫말을 펼쳐본다.

90년 전에 할아버지가 태어나던 날

아침에 받은 선물 시계

언제나 정답게 흔들어 주던 시계

할아버지 옛날 시계

이젠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중략>

할아버지 시계는

무엇이든지 알고 있지

예쁜 새색시가 들어오던 날도

정답게 울리던 시계

우리 할아버지 돌아가신 그날 밤

종소리가 크게 울리며 그쳤네

이제 더 가질 않네 가지를 않네

못 갖춘마디로 시작하는 이 노랫말 속에 슬픔과 아쉬움 그리움이 같이 한다. 할아버지 일생의 고단함을 희망으로 함께 한 괘종시계다. 할아버지 임종과 같이 헤어짐을 알리며 이별한 키다리 시계가 지금도 영국의 조지 호텔에 장식되어 있다. 수강생들은 가락이 서정적으로 흐르는 이 곡을 즐겁게 연주한다. 시계 소리가 연주자 몸으로 흐르며 지루함 없는 일상이 흐른다. 무언가 듣고 있으면 약간의 슬픔과 함께 가슴이 찡하며 미묘한 감정이 든다. 우리 삶의 마지막을 조용하게 끝내듯 알려주는 곡이라고 표현하련다. 시계의 수선으로 삶의 마지막 운명을 연장하다가 묵묵히 감내하며 견딘 90년이 음악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 인간 90년의 세월을 엮어 본다. 자신의 그릇만큼 행복을 담아가며 사는 길, 넘치면 자신도 엎어지고 행복 또한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삶의 많은 사건이 어두운 쪽으로 생겨나리라. 말 못 하는 괘종시계는 시대의 희생물이라 할 터이다. 사물이 내게 찾아오고 생겨나면 항상 다함이 있고, 흥하면 쇠하게 마련이다. 만물이 모두 이처럼 무상하다는 법문을 떠올린다. 누구나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다. 그리고 물건은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세상이 혼돈 속에 빠지는 이유는 물건이 사랑을 받고 있고, 사람들이 그 물건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90세 나이를 보자.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 그게 정말 나이일까. '할아버지 시계'에 담긴 사연은 영원한 아린 추억이다. 니체는 "깨진 틈이 있어야 빛이 들어온다." 라는 말을 남겼다. '할아버지 시계' 또한 깨친 틈으로 빛을 타고 음악 여행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칠십 후반을 넘어선 나 자신을 곱씹어 본다. 무조건 세월 따라가야 할 황혼길이 아닌가. 폐기물이 된 구십 나이 괘종시계를 본다. 내 삶의 행로를 보는 기분이다. 삶의 궤적을 이어가는 숭고한 예술 작품이 아닐까.

폐기물 차가 아파트로 들어온다. 시청에서 발부한 폐기물 표를 달고 수거차로 들어가는 괘종시계를 본다. 그 시계는 이제부터 순간순간 여행을 하리라. 꽉 막힌 일상을 다양한 풍경으로 만들며 여행 작가처럼 살아가리라고 표현해 본다. '니체'의 말처럼 '할아버지 시계'는 깨진 틈으로 빛을 타고 음악 여행을 시작하리라. 아파트 엘리베이터 속에서 멀리 간 키다리 시계를 아쉬워하며, 추억이 될 헨리의 '할아버지 시계' 가락을 떠올린다.

참고문헌

'중학교 음악1' ㈜ 미래엔.
'고등학교 음악' 금성출판사.
'음악 대사전' 세광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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