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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4.03 15:04:48
  • 최종수정2024.04.03 15:04:47

박영록

한국교통대 중국어전공교수

공성계(空城計), 적군이 쳐들어 왔을 때 성안에서 성을 방어할 어떠한 준비도 하지 않고 성문은 활짝 열어 둔 채 코앞에까지 다가온 적군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전술이다. 이것은 적군이 '이게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싶어 제풀에 물러가기를 바라는 작전으로, 가장 낮은 패로 '올인'하는 무모한 도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또 잘 통한다.

아마 동아시아를 통털어 가장 잘 알려진 이야기는 바로 제갈공명의 공성계일 것이다. 제갈공명은 1차 북벌에서 마속이 가정을 빼앗기는 바람에 결국 회군해야 하는 상황에 몰리는데, 이때 본진의 대군을 이미 후퇴시켰으나 정작 본인이 물러나기 전에 사마의의 15만 대군이 어느새 코앞까지 진격해 온 상황이 발생하였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제갈량은 오히려 적군에게 어서 들어오라는 듯 성문을 활짝 열어 놓고 본인은 성루에서 거문고를 연주하며 사마의의 군을 맞이하였다. 그러자 사마의는 제갈량에게 뭔가 다른 계책이 있다고 여겨 결국 퇴각해버린다. 사마의도 당대 최고의 책사인데 과연 이 정도 계책을 꿰뚫어 보지 못하였을까?

제갈량의 공성계는 정사 ≪삼국지≫에도 실려 있다. 다만 본문이 아니라 배송지의 주석으로 수록되어 있는데, 시기와 구체적 장소 등 세부적 상황은 소설 ≪삼국연의≫와 조금씩 다르다. 흥미롭게도 배송지가 이 공성계를 기록한 이유는 이것이 사실일 리가 없다고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이 반박 때문에 제갈량의 공성계는 허구라는 것이 대략 정설화 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배송지의 주장 또한 허점이 많다. 요컨대, 배송지는 네 가지 반박을 하였는데, 그 중 역사적 팩트에 근거한 주장은 '空城計 사건 당시 사마의는 형주 완성에 있었으므로 제갈량과 맞닥뜨릴 수 없다'는 것 하나 뿐이다. 그런데 이것은 배송지가 공성계 사건을 1차 북벌 시기로 착각한 것이다. 제갈량의 3차 북벌과 4차 북벌 사이인 230년에 위나라 측에서 촉으로 선제공격을 감행한 바가 있는데, 이때 한수(漢水)를 따라 북상한 사마의가 적어도 한중 인근까지 진격했던 것은 분명하므로 공성계에서 말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수 있다. 나머지 세 개의 주장은 모두 추정 논리이다. 예컨대, 20만 대군을 거느린 사마의가 뭐가 무서워서 도망쳤겠는가, 제갈량은 위연을 신뢰하지 않는데 정예병을 딸려 보냈을 리 없다, 제갈량의 공성계 이야기가 기록된 문맥은 사마의의 아들인 부풍왕 사마준의 면전에서 발생한 일인데, 아들이 아버지의 흑역사를 듣고 가만있었겠느냐는 것 등이다. 이런 것은 객관적 반론이 될 수 없다. 특히 '20만 대군이 뭐가 무서워서 도망가느냐'고 하는 비판은 전투이론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말이다. 중국 사서를 뒤져 보면 공성계가 대략 10번 이상 등장하는데, 이들 공성계는 모두 성공한다. 요컨대 공성계라는 올인 도박은 승률 100%의 작전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몇 가지 병법상의 이유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기세의 심리전이다. 수만 명의 적군이 들이닥쳤는데, 성문 활짝 열어 놓고 길에서 빗자루질이나 하고 있다는 것은 거의 탈인간계 수준의 배짱인데, 이런 상대에게 달려든다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란 설명하기 어려우나 한 번 말려들면 헤어나기 어렵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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