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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소풍길 -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황홀한 문화의 숲, 예술의 바다에서
춤추고 노래하자, 나만의 도파민을 찾자

  • 웹출고시간2013.10.13 18:08:15
  • 최종수정2013.10.13 18:03:43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반달이 뜨고 별이 빛난다. 한낮에 노래하던 햇살과 바람과 구름과 계곡의 물살도 이제 고단함을 접고 달처럼, 별처럼 자유를 꿈꾸는 시간이다. 지난 여름은 얼마나 뜨거웠던가. 그 태양의 기세에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이 상처입고 시름했는데 그래도 너 참 잘 견디고 참아냈다. 산도 들도 하늘도 호수도 모두 붉은 핏방울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라. 아름다움은 이처럼 어려운 것, 결국에는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날 뿐인데…. 그 아름다움을 좇아 가을 숲에 서서 노래를 한다. 달이 뜨고 별이 빛나는 그 숲속에서 발가숭이가 돼 하나이고 싶다.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공
가을숲을 꿈꾸는 사람은 <익숙함 그리고 새로움Something Old Something New>을 주제로 한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주목할 일이다.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작품, 방치되었던 옛 담배공장의 규모, 그리고 작품과 공간의 조화를 보며 문화의 숲, 예술의 바다를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용미학이라는 공예의 오래된 관습이 파괴되면서 새로운 영감과 끝없는 창조의 블랙홀에 빠져들 것이고, 넓고 높고 거칠고 야성적인 담배공장의 웅장함에 기가 죽을 것이며, 60개국 3천여 작가들의 작품이 거친 공간속에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 야릇한 감흥에 젖을 것이다.

'운명적 만남'의 기획전1관은 재료와 기법과 디자인과 시공의 경계를 넘나든다. 때로는 과학적이고, 때로는 철학적이며, 때로는 심미적이고, 때로는 운명적이다. 공예의 영역이 미술의 모든 장르를 포용하고 융섭하며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선도하고 있음에 감탄한다. 케이트 맥콰이어는 버려진 자연계의 일상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고자 했다. 깃털 하나 하나를 닦고 모아 거대한 패턴을 만들었다. 작가는 그 안에서 새로운 아름다움과 용솟음치는 생명의 기운을 찾고자 하지 않았을까. 포르투갈의 국민 작가 조안나 바스콘셀로스는 작품을 통해 일상의 반전을 꿈꾸고,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했다. 버려진 옷, 낡은 섬유조각들이 하나 둘 모여져 장대한 생명체로,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회적 이슈로 돌아왔다.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공

한국의 도예가 이강효는 청자와 백자, 옹기와 분청사기의 숨막히는 도자사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작품 앞에 서면 하늘같기도 하고, 땅 같기도 하며, 미술의 영역인지, 철학의 영역인지 당황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미와 큐세츠 12세는 일본 야마구치현 하기 지역의 대표적인 도자가문의 후손이다. 기능성을 중시하는 도자의 역사를 거부하고 생과 사, 실존과 이상의 철학적, 심미적 문제를 도자조형으로 선보이고 있다.

이밖에도 중국의 주락경은 인간과 동물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꿈을 향해 달려가는 작품을 통해 조형 도자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으며, 중국의 루빈은 도자조형물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자동적으로 소멸되는 기법을 통해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기획전2 '현대공예의 쓰임'은 섬세하고 미려한 매력을 품고 있다. 가네코 겐지라는 일본 감독이 지휘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주제가 말해주듯 현대공예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 화답하려는 것일까. 기획전1과 달리 조형미와 예술성을 최소화하였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이 아름답고, 실용적이기에 내 삶의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에 젖는다. 그 무엇 하나 버릴 것이 없다. 거실, 주방, 침대, 서재, 사무공간 등에 꽃이 되고, 삶의 마디에 벗이 되며, 더 나아가 예술의 가치를 품고 있으니 공예는 곧 우리들의 자화상이라는 진리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공
일본의 현대 도예가 코마츠 마코토는 손발이 달린 컵 시리즈를 통해 삶의 가치와 공예의 가치를 하나로 엮어 더 큰 미래가치를 담아내고 있으며, 나사토 아키오는 도자기에 빛의 환영을 담았다. 얇고 투광성 있는 자기에 극단적으로 많은 구멍을 내어 용기로의 기능뿐만 아니라 공간연출과 심미적 가치를 갖게 하고 있다. 영국 최고의 도예가로 뽑히는 줄리언 스테어는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미니멀한 생활도자의 극치를 선보이고 있다. 미국의 유리작가 보이드 스기키는 고대와 현대의 건축물에서 영감을 얻어 빌딩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유리 블로잉을 통해 각각의 형태를 만들고, 이 형태들이 다시 모여 하나의 건축물을 형상화해 밝고 경쾌한 각양각색의 생활공예품을 탄생시켰다.

초대국가인 독일관으로 발길을 옮기면 간결한 디자인, 명쾌한 색상, 실용성과 기능미를 품고 있는 독일 공예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패션, 쥬얼리, 도자, 가구 등 모든 작품에 걸쳐 군더더기 없고 간결하며, 혁신적이고 유용하며, 아름답고 심미적이며, 세월의 때를 타지 않고 인간의 감성을 변주하며 삶의 공간까지 윤택하게 해 준다. '산업디자인계의 살아있는 전설' 디터 람스의 <디자인 10계명>을 보는 듯하다.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공
어디 이 뿐인가. 장르의 벽이 허물어지고, 기법이 다양해졌으며,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실용과 예술․과학과 철학의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국제공예공모전은 어떠한가. 이탈리아 최고의 유리공예, 핀란드의 생활공감, 일본의 디자인, 독일의 패션스타일 등을 만날 수 있는 국제산업관, 현대미술의 흐름을 조망하고 컬렉션할 수 있는 국제아트페어, 연예인들의 미술세계를 훔쳐볼 수 있는 스타크라프트, 무형문화재와 명장들이 직접 무대를 만들어 자신의 아픈 삶과 심오한 예술의 깊이를 소개하는 워크숍, 살아있는 공예교육의 산실을 꿈꾸며 체계적으로 준비한 교육 프로그램까지 버릴 게 하나 없다.

공간과의 조화로움도 관람객들을 감동하게 하는 중요한 포인트다. 도시의 흉물로, 애물단지로, 사회적 문제로 낙인 찍혔던 공룡같은 건물이었다. 그렇지만 낡은 건물이 주는 매력, 칠하지도 않은 생얼미인 그대로의 모습에 예술작품이 조화를 이루면서 천생연분이라는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고의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공예클러스터, 국립공예센터, 시민예술촌, 시민극장, 뮤지컬아카데미, 문화융성센터, 문화쇼핑센터 등 수많은 정책 아이디어가 제시되었다.

ⓒ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제공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생각의 탄생>을 통해 창조적 사고와 지식의 대통합을 통한 신르네상스를 강조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피카소, 마르셀 뒤샹, 버지니아 울프 등 세계적인 과학자나 예술가 모두가 창조적인 사고와 행동, 그리고 지식의 대통합을 통해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했음을 역설한다. 이들은 모두 마음의 눈으로 관찰하고, 머릿속으로 형상을 그리며, 모형을 만들고, 유추하여 통합적 통찰을 이끌어 냈다. 이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문학 예술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오늘과 같은 발전은 찾기 어려웠을 것이다.

2013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가 나라 안팎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도 공예라는 작은 공간에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향한 끝없는 항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담배공장이 불 꺼진 지 10년, 이곳에 공예라는 인류 공통어로 문화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높고 넓고 거칠고 야성적인 공간이 공예의 숲, 예술의 바다로 변신했으니 세계가 놀랄만하다. 창조경제, 문화융성, 국민행복의 시대정신도 만날 수 있다. 드넓은 숲 속을 뛰어다녔던가, 바다 속 깊은 곳을 헤엄쳐 다녔던가, 시공을 초월한 우주여행을 하였던가. 그 끝을 알 수 없는 드넓은 전시장을 빠져나온 사람들은 공예에 대한 새로운 생각과 즐거웠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 할 것이다. 길 위의 도파민을 만난 것처럼 신선한 충격과 에너지로 가득할 것이다.

공예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아름다운 쓰임이다. 공예는 살아있는 과학이자 철학이며, 건축이자 삶이다. 공예는 통섭이자 융합이며 빛이고 소통이다. 공예는 맛있는 사랑이고 희망이며, 우정이고 자연의 미학이다. 그리고 공예는 삶이란 무대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바로 당신이다. 나는 우리는 보았다. 전시장을 향해 자박자작 걸어가는 발걸음에서, 불 꺼진 담배공장의 건물 곳곳에서,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 작품을 보는 환환 미소 속에서 백만 송이의 꽃을 보았다. 깊어가는 가을, 황홀한 공예의 유혹에 빠져보자.

글 변광섭(청주시문화재단 문화예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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