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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들고 부러지고…속리산 정이품송 '수난시대'

1980년대부터 솔잎흑파리 감염 수세 약화
21세기 들어 강풍에 가지 찢겨 원형 훼손
태풍 '볼라벤'으로 또 하나의 가지 잃어

  • 웹출고시간2012.08.28 20:17:08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주요 문화재 경제적 가치로 연간 4천152억 원이 넘는 천연기념물 103호 속리산 정이품송이 21세기 들어 강풍을 동반한 태풍에 가지가 찢겨나가는 수난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 주요 문화재의 경제적 가치는 각각 연간 수천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지난 2009년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문화재의 공익적·경제적 가치분석 연구'에 속리산의 수령 600살 정도의 소나무 정이품송의 연간 경제적 가치를 4천152억 원으로 평가했다.

이 연구에서 가치 산정은 전국 취업자 1천 명을 대상으로 문화재마다 '보존·활용에 매년 세금으로 얼마를 낼 수 있는지'를 조사해 평균한 금액에 취업자 숫자를 반영하는 '조건부가치측정법'(CVM)이 동원됐다.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 선진국도 자연환경이나 문화재 등 가치를 평가할 때 이 방식을 쓴다.

연간 경제적 가치 4천억 원이 넘는 정이품송의 수난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수령 600살을 넘긴 소나무는 20세기와 21세기를 앞둔 시점에서 시작됐다.

정이품송은 1980년대부터 솔잎혹파리에 감염돼 수세가 약화되면서 수난시대를 맞았다.

1993년 정이품송은 강풍에 동북쪽 가지를 잃었다. 솔잎혹파리 감염으로 수세가 약화된 소나무는 강력한 바람에 가지를 잃었다.

1993년 동북쪽 큰 가지를 강풍에 잃은 뒤 5년만에 바로 옆의 또 다른 가지(지름 20㎝)가 말라 죽었고, 2001년과 2004년 폭설 때도 지름 15㎝짜리 중간 가지 1개와 잔가지 7개가 연달아 부러졌다.

이때 문화재청과 보은군은 3년 전 이 나무의 기력 회복을 위해 뿌리 과습(過濕)을 유발하는 것으로 지적됐던 나무 옆 달천의 수중보(길이 34m, 높이 1.3m)를 철거하고 밑동 주변 복토(두께 5㎝)를 제거했었다. 또 주치의(나무병원)를 지정해 주기적으로 건강상태를 살피며 수세를 회복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후 2007년과 2010년에도 20㎝ 안팎의 가지 서너 개가 부러지며 원추형 자태를 잃고 말았다.

강풍으로 가지 하나를 또 잃은 정이품송. 1993년 강풍에 가지를 잃은 후 2007년 2010년 가지 서너 개가 부러진 천연기념물은 볼라벤의 피해를 피해가지 못했다.

28일 오전 9시30분께 정이품송은 강풍을 동반한 초대형 태풍 '볼라벤'에 또 하나의 가지를 잃었다. 이 가지는 지름 18㎝·길이 4.5m가량으로 서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보은군은 한국의 대표적 소나무인 정이품송 외에도 일명 정부인 소나무로 알려진 서원리 소나무(천연기념물 352호), 어암리 백송(白松) 등 전국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소나무를 3그루씩이나 보유한 곳이었다.

하지만, 정이품송의 가지가 부러져 원형을 잃어가자, 어암리 백송도 뿌리가 썩고 잎이 말라 2004년 최종 고사 판정을 받았다.

또 잎 끝이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던 '속리산 황금소나무'는 발견된 지 2년여 만인 2004년 3월 폭설을 견디지 못하고, 직경 8㎝, 길이 1m의 큰 가지 1개가 부러진 뒤 자취를 감췄다.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희귀목이었던 보은우체국 백송은 일제 강점기인 1938년 심어진 뒤 70여 년 동안 인고의 세월을 견디어 왔으나 수년간 줄기 곳곳에서 수액이 흘러내리는 등 시들시들 앓다가 지난해 7월 끝내 생명을 다했다.

이처럼 군내 희귀 소나무들이 죽거나 죽음의 위기에 처해 있지만 군 관계부서는 문화재청에서 지정한 전문 식물보호업체에 위탁해 보호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마련치 못하고 있다.

정유흔 군 학예사는 "소나무 고장의 명성을 다시 찾고 소나무를 지역 브랜드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대책반을 상시 운영해 체계적인 보호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편, 높이 16m, 가슴높이 둘레(지상 1m) 4.7m인 정이품송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1455년∼1468년) 행차시 어가(御駕)행렬이 무사히 통과토록 가지를 스스로 들어올려 정이품 벼슬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 엄재천기자 jc00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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