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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인왕산 수성동 기린교와 청주 남석교

  • 웹출고시간2025.04.02 17:35:35
  • 최종수정2025.04.02 17:35:34

겸제 정선 作 '장동팔경첩'

ⓒ 뉴시스
서울에 사는 죽마고우 J와 인왕산을 오른 적이 있다. 시민들에게 개방된 한양도성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를 통해 늘 보던 산을 한발 한발 오른다 생각하니 가슴이 콩당콩당 거렸다. 통인시장과 종로구립 박노수 미술관을 걸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인왕산 입구가 나왔다. 앞서가던 친구는 신기한 것을 보여준다며 휴대폰을 꺼냈다. 휴대폰 속에는 겸재의 수성동 계곡을 그린 산수화가 있었다. 친구가 보여준 산수화와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비교해 보니 사진을 찍어 놓은 듯 같았다. 수성동(水聲洞)이란 이름은 맑고 경쾌한 물(水)소리(聲)가 인상적이라서 붙여진 것으로, 여기서 '동(洞)'은 행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계곡'이란 뜻이다. 총 길이는 190m정도로 지금은 복개된 인사동 실개천을 거쳐 청계천으로 흐르지 않을까 짐작된다.

이 일대에서 나고 자란 화가 겸재 정선이 그린 이 그림은 수성동을 비롯한 북악산과 인왕산 일대의 빼어난 경치를 그린 그림을 모은 '장동팔경첩'에 실려있다. 겸재는 진경산수화의 대가이다. 그전까지 화가들은 중국 화첩에 나와 있는 산수화를 보고 관념적으로 그렸다. 18세기에 이르러 사생을 통해 정감이 가는 둥글둥글한 우리 산을 그리게 된다. 이를 간송미술관 부설 연구소에서는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 명명했다. 겸재는 돌다리인 기린교(麒麟橋)를 비롯해 나무 한 그루까지 매우 상세하게 묘사했고,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모습도 그림에 담았다. 정선은 드론에서 내려다본 것같이 약간 높은 곳에서 산수화를 그렸는데, 이를 한국화에서는 '부감법'이라 한다. 그림 속에는 세 사람과 시중드는 어린아이가 나오는데 겸재와 친구들로 보인다.

신기한 것은 산수화에 그려진 작은 돌다리 기린교가 좁은 돌 틈 사이에 실제로 놓여져 있는 것이다. 기린교는 다리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크기로 길이 3.7m의 긴 돌이다. 세로는 35cm 2개 돌을 붙여 만들 것으로 70cm다. 기린교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나와 있다. '인왕산 기슭, 넓은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으니 바로 비해당(匪懈堂, 안평대군의 호)의 옛 집터이다. 시내가 흐르고 바위가 있는 경치 좋은 곳이 있어서 여름철에 노닐고 구경할 만하고, 다리가 있는데 기린교(麒麟橋)라 한다.'고 기록돼 있다. 1770년경에 제작된 '한양도성도'에도 기린교가 표기돼 있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1418~1453)은 정치적 야심을 가진 형 수양대군(세조, 1417~1468)에 맞서 어린 조카 단종을 위해 죽음으로 신의를 지켰다. 그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해 수성동 계곡에 자신의 호를 따 '비해당'이라는 별장을 짓고 시와 그림을 즐겼다. 비해(匪懈)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숙야비해 이사일인'(夙夜匪解 以事一人)에서 나온 말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게으름 없이 한 사람을 섬긴다.'는 뜻이다.

청주 남석교

ⓒ 뉴시스
겸재가 수성동 계곡을 그린 이후 이 풍경이 온전히 보존된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의 이기주의로 인해 콘크리트로 덮어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1971년에 계곡 일부가 메워지고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선 것이다. 전쟁 이후 10여 년간 서울의 인구가 폭증하면서 무허가 판잣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에서 1960년대 말부터 판잣집을 헐고 시민아파트를 여러 곳에 지었다. 그중 하나가 '옥인시범아파트'였던 것이다. 이때 기린교도 콘크리트 아파트 정글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던 중 2007년 대통령 경호실이 청와대 부근의 문화유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옥인시범아파트 옆 계곡 암반의 벽 사이에 기린교가 남아 있는 것이 확인됐다. 그 후 2011년 7월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는 과정에 돌다리 모습이 드러나면서 이곳이 다시 화제가 됐다.

수성동 계곡에는 옥인시범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수려한 경관을 잃어버렸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난 후 수성동 계곡 복원사업이 이루어졌다. 아파트를 철거하고, 문화재보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본래의 아름다움을 되찾은 것이다. 오랫동안 주민들과 개발업자의 이해관계로 갈등을 빚다가 철거를 결정하고, 본래의 계곡 모습으로 복원했다고 한다. 서울시에서는 옛 모습을 최대한 재현하기 겸재 정선의 '수성동 산수화'를 참고해 공사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일부러 구부러진 소나무도 심었고, 기린교도 원형대로 복구했다. 옥인시범아파트도 주민들의 생활상이 묻어있는 하나의 역사적 흔적이라는 의견을 반영해, 아파트 7동 벽체의 일부는 바위 언저리에 남겨 두었다.

설계도가 남아 있는 수원화성은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반면, 수성동 계곡은 한 화가의 그림이 복원에 도움을 줬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원상복구가 된 모습을 보니 인간의 능력에 놀라웠고, 현명한 판단을 한 많은 이들이 존경스럽다. 콘크리트에 덮여있던 기린교를 기적같이 살려 놓는 것을 보며, 9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청주 육거리 시장상가 아래 묻혀 있는 '남석교'가 생각났다.

남석교는 너비 4.1m, 길이 81m로 조선 시대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었던 돌다리이다. 26개의 돌기둥을 세운 뒤 널빤지 모양으로 다듬은 화강석을 대청마루 놓듯 이어놓은 모양새다. 축조 시기가 길게는 기원전 57년, 신라 진흥왕 이전, 또는 고려 시대라는 다양한 학설부터 짧게는 조선 중기 이전이라는 분석이 있다. 청주시 석교동(石橋洞)이란 지명은 남석교에서 유래해 것이다. 이런 남석교가 땅속에 묻힌 것은 일제 강점기 때다. 남석교 밑으로 흐르던 무심천의 물길이 1906년 대홍수로 바뀌자 다리 바닥에 흙이 쌓였는데, 1932년 청주 석교동 일대 제방 공사를 하면서 남석교를 흙으로 묻어 버렸다.

청주시는 땅속의 남석교로 접근하는 통로를 만들거나 이 다리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지상에 투명한 구조물을 설치하는 복원사업을 추진했었다. 하지만 토지 보상비가 만만치 않은 데다 상권 위축을 우려하는 육거리 상인들의 반발에 첫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남석교 밑이 모래땅이어서 복원에 나설 경우 육거리시장 지반 침하나 건물 붕괴가 우려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예로부터 남석교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건강을 기원하는 '답교놀이'가 행해졌는데, 일제가 도시 정비를 내세워 민족문화를 말살하려고 묻어 버렸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정월 대보름에 자기 나이만큼 남석교를 오가면 건강을 챙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해져 다리를 건너는 풍습이 이어져 왔었다. 하지만 지금은 땅속에 묻혀 있어 눈으로 볼 수 없고 건널 수도 없다. 2002년부터 청주문화원은 정월 대보름에 어설프게 남석교 모형을 만들어 놓고 다리를 건너는 답교놀이를 재현하고 있을 뿐이다. 청주는 16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도시라고 하지만 크게 내세울 만한 문화재가 많지 않은 편이다. 국보로 지정된 것은 용두사 철당간(국보41호)과 안심사 영산회괘불탱(국보297호)이 있을 뿐이다. 청주가 다른 도시에 비해 대형카페가 많은 이유는 마땅히 가 볼만한 곳이 없어서라는 말도 있다. 남석교는 진천 농다리를 능가하는 보물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청주시는 서울시의 수성동 기린교 복원을 본보기 삼아, 한 세기 가깝게 땅속에 묻혀 있는 남석교에게 햇빛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그러면 '노잼도시'라는 꼬리표를 떼는 데 일조하지 않을까?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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