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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화가의 재료 찾기 여행

  • 웹출고시간2025.01.22 16:40:01
  • 최종수정2025.01.22 16:40:01
그림이란 선이나 색채를 써서 사물의 형상이나 이미지를 평면 위에 나타낸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많이 사용되는 색채는 서양에서는 유화물감(oil paint), 아크릴 물감(acrylic paint) 등이 있고, 동양에서는 먹물과 석채(石彩), 분채(粉彩)등의 동양화 안료를 아교에 개어 사용하는데 현대에 와서는 튜브로 된 물감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안료들을 거부하고 자기 나름대로 재료를 찾아내 유명해진 작가들이 있다.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의미가 없어지자, 작가의 생각을 개성적으로 표현하고 남과 다른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안료보다는 그들이 찾아낸 재료들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작가로 전광영, 이동재, 최소영, 심수구 등이 있다.

전광영(1944~ )작가는 지난 1995년부터 입체 회화 '집합(aggregation)'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스티로폼을 삼각형 조각으로 잘라 한지로 이를 감싸고 한지로 꼰 끈으로 묶는다. 이 조각들을 캔버스 위에 붙이는 작업이 특징적이다. 이는 어린 시절 큰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의원에서 늘 봐왔던 한약 봉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평면뿐만 아니라 거대한 입체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가 사용하는 한지는 고서다. 적게는 50년, 많게는 100년 전 것으로, 옛 신문, 서생들이 공부했던 책, 가문의 족보, 상점에서 사용했던 장부 등이다. 이때 사용되는 고서들이 문화재적 가치는 크게 없지만 옛 것을 훼손시킨다는 비판의 소리가 들리자, 작가는 고서를 한지에 복사해 사용한다고 한다. 전광영은 개개인의 삶의 경험과 흔적을 수집해 포장하고, 많은 이들의 혼을 동시대 시공간에 공존하도록 한다.

무채색 화면에 작은 면들이 긴밀하게 짜여 있는 그의 작품들은 기하학적인 미니멀 조각들의 집합이면서도, 외부 조명에 의한 그림자 효과, 채색에 의한 강한 입체감을 띠는데 작품 앞에서 관람객은 고요하면서도 힘찬 에너지를 느끼는 동시에 고서에서 전해지는 과거의 무수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51세에 시작해 30년째하고 있는 한지 작업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 전광영은 스타보다 훌륭한 화가로 남고 싶다고 한다.
클릭하면 확대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임시정부를 이끈 김구와 임정의 살림꾼 정정화 등 독립운동가의 초상을 크리스탈로 재현해 낸 이동재 작가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 뉴시스
이동재(1974~ ) 작가는 곡식을 캔버스에 붙여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스타일은 농산물을 주제로 한 테마전에 전시 작가로 초청돼 콩이나 팥 등으로 작업을 해달라는 의뢰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이 작가는 낟알들이 가지고 있는 일정한 크기와 색깔을 접목해서 작품을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고, 곡식 낟알들을 특별한 오브제로 새롭게 인식했다.

특히 쌀에는 한국인만의 정서가 담겨져 있는 점을 주목해 쌀로 인물의 초상을 그린 시리즈를 발표한다. 처음에는 재료에 주목하면서 콩으로 '미스터 빈'을, 녹두로 '녹두장군 전봉준'을, 현미로 '가수 현미'를 언어유희적으로 표현했다. 크리스탈을 이용한 스타 인물화 시리즈도 진행했다. 이소룡, 제임스 딘, 마릴린 먼로 등 스타들과 체 게바라, 버락 오바마, 그리고 안중근 의사 등을 별모양의 조각들로 표현하기도 했다. 그가 쌀로 백범 김구 선생을 만든 작품이 청와대에 전시된 적이 있을 정도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유명세는 얻었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으로 계속 숙이고 작업을 하다 보니 목이나 허리에 무리가 와서 병원 신세를 진 적도 있을 정도로 그의 작업은 녹록치 않다.

최소영, 붉은 산.

ⓒ 뉴시스
청바지 작가로 알려진 최소영(1980~ )은 대학교 2학년때 부터 고향 부산 풍경을 청바지라는 이색 재료로 형상화해 인기작가가 됐다. 작가는 굽이치는 파도와 주변의 아파트, 하얀 구름, 화려한 불꽃놀이를 낡은 청바지와 단추 등을 이어붙여 완성한다. 누구에게나 낡은 청바지는 추억의 산물이다. 그래서 작가는 청바지를 보면 그 사람의 태도나 자세, 버릇, 취향, 스타일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낡은 청바지를 모아 구성한 풍경은 한 도시를 거닐었던 사람들의 체험과 기억을 짜깁기한 것이라고 한다.

24세 때 그의 작품이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천여만 원에 처음 낙찰된 이후, 최 작가는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인기 있는 블루칩 작가가 됐다. 그의 작품은 억대에 작품이 거래되고 있다. 청바지의 본고장 미국에서조차도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세계 최초라는 신선함과 보기만 해도 시원한 색감들과 밀도 높은 묘사가 많은 사람들을 열광케 하고 있는 것이다.

심수구(1949~ ) 작가는 우리나라 야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싸리나무의 가지를 패널 위에 하나하나 손으로 붙이는 평면 입체 작업과 설치 작업으로 '싸리작가'라고 불리고 있다. 울산에서 과수원집 아들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 추상 회화 작업을 하던 중 작업실 뒷산을 산책하면서 우연히 본 싸리나무 가지를 잘라내 붙여본 것이 계기가 됐다.

그러나 작가는 그보다 더 오래전, 어머니가 과수원에서 가지치기하고 남은 나뭇가지를 말려 아궁이 불을 지피던 시절 각인된 이미지가 자연스레 작업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싸리 작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탐구하는 주제는 '반복과 차이'다. 그의 작품은 수백 또는 수천 개의 나뭇가지를 반복적으로 촘촘하게 세워 붙이는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된다.

심 작가는 "우리는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는 무의미하고 가치 없다고 생각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도 반복적이지만 사실 그렇게 숨 쉬는 행위가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이루듯 하잘것없는 나뭇가지를 반복적으로 붙인 결과물로 보는 이들에게 큰 울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필자는 대학에서 배운 전통 채색화 작업을 10여 년간 지속했다. 그러다 20여 년 전부터는 틀에 박힌 기법, 재료 등으로는 많은 생각을 표현하기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은색 구슬핀, 면봉, 맥주와 음료수 캔을 작게 자른 것을 화면에 모자이크하는 작업이었다. 그러다 최근에는 백과사전이나 잡지로 종이 딱지와 전자제품에서 나온 기판을 붙여 대형작품 작업을 했고 증평과 서울에서 전시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재료들을 이용한 작품들로 이런 스타일을 정크아트(junk art) 또는 업싸이클링 아트(upcycling art)라고 한다.

전시장을 방문해 필자의 작품을 본 L 목사는 "선생님은 하나님 같으신 분이군요!"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 이유를 여쭤보니 "그렇잖아요, 내가 지금은 목사이지만 별로 대단치가 않은 사람이었어요. 심하게 말하면 하나님은 쓰레기 같은 나를 사용하셔서 이토록 멋진 예술품 같은 목사의 삶을 평생 살게 하셨는데, 선생님은 이런 쓰레기 책들을 딱지로 접고, 버려지는 전자 부품을 사용해 예술품을 만드셨으니 작가님이야말로 하나님 같으신 거죠"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림이라는 한 우물을 파다 보니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아 창작 의욕이 샘™“았던 경험이었다. 딱지작품 전시회를 보고 쓴 글로 그 목사님은 수필가로 등단하기도 했다. 그는 은퇴 후 글을 쓰며 사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준 것이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지만 독특한 재료로 빛을 발하는 미술가들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미술은 남과 다른 자기 색깔로 작품세계를 펼치는 것이 남들로부터 주목받는 작가가 되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문제는 특허받은 제품들과 같이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것은 쉬워 보이는데 남들이 안 하는 작업방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싸리작가 심수구는 "철학자든 예술가든 시대를 앞서가야 합니다. 지난 시대의 철학을 읊는다면 철학자라고 할 수 없듯 지나간 형식이나 발상을 표현하는 것은 모방밖에는 안 되니 작가가 될 수 없지요. 그러고 보면 저는 재료라도 새로운 것을 발견했네요"라고 말했다. 이를 볼 때 예술가는 정답 없는 문제를 풀기 위해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방랑하는 여행자이다. 그래서 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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