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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2.11 13:53:33
  • 최종수정2025.02.11 13:53:39

한영현

세명대학교 교수

얼마 전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2024)를 감상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 영화는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의 가치를 '도시'와 '빛', '나무' 등의 오브제들과 아름답게 조화시키며 인간과 사물이 구축하는 생동하는 삶을 감동적으로 재현한다.

영화 속 히라야마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보통의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된다. 공공 화장실 청소가 주요한 사회적 활동이지만 히라야마의 일상은 그 외의 일들로 꽉 채워져 있다. 이른 아침 출근하면서 마시는 자판기 캔 커피, 화려한 도심의 도로를 따라 차를 몰며 듣는 올드 팝, 피로를 풀어 주는 공중목욕탕에서의 사우나와 단골 주점에서의 달콤한 음주 그리고 잠들기 전 노곤한 몸으로 즐기는 독서, 짧은 점심시간 동안 늘 찍는 필름 카메라 사진은 일상을 충만함으로 물들인다. 매일 아침 물을 뿌리며 소중하게 키우는 작은 식물들도 빠질 수 없다. 몇 가지 일상의 변칙이 있기도 하지만 일상의 시간을 채우는 이러한 일들로 시작되고 마무리되는 히라야마의 하루는 영화 전반부 내내 반복된다.

다소 지루하고 무의미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의 반복 속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히라야마야말로 삶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만의 삶을 조직하고 거기에 만족하는 게 무엇인지 체득한 인물이다. 성공과 명예를 추구하는 화려하고 치열한 도시의 삶 혹은 가족이나 연인이 없더라도 그가 꾸려낸 일상의 삶이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마주하는 그의 클로즈업된 얼굴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그는 온전히 자신이 선택한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의 의미를 언어를 넘어서 있는 궁극의 표정으로 보여 준다. 그의 과거와 인간관계 그리고 사회적 성취 등을 따지는 것이 큰 의미가 없는 이유는 히라야마가 구축한 일상의 루틴과 충실함이 그에게 보통의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만족감과 충만함을 안겨 준다는 걸 영화 내내 그의 행복한 표정들 속에서 우리가 함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도시 도쿄의 한복판에서 히라야마는 잘 보이지 않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그의 작고 오래된 집이 도시의 상징인 도쿄 타워와 함께 재현되는 영화 속 장면들 속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도심의 한복판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오래되고 쇠락한 공간을 점유하고 조용하게 살아간다. 히라야마와 집은 도시의 화려함으로 인해 쉽게 가려지고 때로는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나 그는 도시의 화려함과 편리함을 위해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마치 도심에 신선한 활력과 공기를 제공하는 빛과 나무가 보통의 일상에서 쉽게 인식되지 않으나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잘 보이지 않으나 생동하는 삶의 가치는 바로 그러한 곳에서 발견된다.

영화의 주인공 히라야마와 그의 삶은 과도한 성취의 강박과 경쟁의식 속에서 화려한 겉모습과 외부적인 가치들을 추구하는 개인들에게 과연 그것이 진짜 나를 살리는 길인지 역설적으로 되묻는다. 그의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얼굴은 어쩌면 우리가 언젠가 잃어버렸으나 지금도 순간순간 여전히 절실하게 추구하는 우리의 그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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