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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2.03 15:40:06
  • 최종수정2023.12.03 15:40:06

이두표

수필가

내 휴대전화는 요즘 바쁘다. 정확히는 휴대전화 속 단체대화방이 매우 부산스럽다. 코로나19도 만만해졌는지 올 가을엔 결혼식이 부쩍 많아졌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각종 수상 소식도 빈번하게 들린다. 그럴 때마다 축하 인사로 대화방이 시끌벅적하다. 회원 수가 10여 명 정도로 작은 대화방은 그래도 괜찮다. 수십 명, 혹은 백 명이 훨씬 넘는 커다란 대화방은 잠시 한눈을 팔면 확인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알림과 인사말이 몇십 개씩 쌓인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쌓인다. 이때는 내 휴대전화만 바쁜 게 아니라 이를 수시로 확인해야 하는 나도 덩달아 바빠진다. 그럼에도 가끔은 꼭 인사해야 할 곳을 빠뜨려 난처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면 애먼 휴대전화에게 화풀이를 한다. 정작 중요한 건 안 알려주고, 빌어먹을 휴대전화 같으니라고!

곧 연말연시가 되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내 휴대전화는 이런 인사말을 전달하느라 아주 많이 바쁠 것이다. 내 마음도 따라서 바빠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며칠 지나면, 정말 단 며칠만 지나면 누구와 뭐라고 인사를 했는지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할 것이다. 누구와는 인사를 하지 않았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궁금했다. 휴대전화 단체대화방을 통해 인사를 받는 당사자들은 휴대전화 속에서 유령처럼 동동 떠다니는 저 수많은 인사를 기억할까? 나에게 누가 인사하고 누가 인사하지 않았는지, 내가 누구에게는 하고 누구에게는 하지 않았는지 기억할까?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 왜? 물론 진심을 담아서 축하의 말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기는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풍조가 영~ 마뜩잖고 불편했다.

고민이 됐다. 이렇게 계속 무미건조한 인사를 주고받느라 일상을 바쁘게 만들 것인가. 나를 한가롭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 끝에, 단체대화방 모두를 조용한 대화방으로 묶었다. 메시지 알림 소리도 안 나게, 메시지도 보이지 않게 조치했다. 이제는 내가 대화방을 일부러 열어서 확인하지 않는 한, 대화방이 먼저 나를 괴롭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다. 드디어 휴대전화가 조용해졌다. 만족스러웠다. 하루에 한 번 혹은 이틀에 한 번 그 대화방들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인사를 해야 하면 직접 전화를 했다. 인사말과 함께 소소한 근황도 서로 주고받으니, 상대방과 더 친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상대방에게 예의를 지킨 것 같아 기분이 좋았고, 전화를 받은 상대방도 댓글 한두 줄 인사말을 받는 것보다 훨씬 좋다고 했다. 더 만족스러운 점은 수시로 토독토독 울려오던 메시지에 대응할 필요가 없어지자, 내 일상이 한가로워졌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로 인해 깨졌던 안식을 드디어 되찾은 것이다.

단체대화방 문제를 해결한 나를 스스로 칭찬하면서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친한 친구 녀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가 속한 작은 모임의 총무다. "두표씨"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다. 매우 기분이 나쁘다는 표시다.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따다다다 퍼붓는다. "얌마! 이틀이 지나도록 왜 댓글을 안 다는 겨. 너만 안 달었잖어. 너 땜에 아무것도 진행이 안 되잖어. 빨리 댓글 달어. 5분 준다. 당장 안 달면 너 나한테 죽을 줄 알어" 친구는 제 말만 하고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내 말은 한마디도 듣지 않고.

에휴, 휴대전화로 인해 깨진 안식을 되찾기는 개뿔. 친구에게는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애먼 휴대전화에게 화풀이를 했다. 빌어먹을 휴대전화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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