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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9.16 17:34:04
  • 최종수정2021.09.16 17:34:04

안남영

전 HCN충북방송 대표

"권력 중에서도 아무 실속없이 넘들이 흘린 부시레기나 줏어먹는 핫질(下秩) 중에 핫질이 바로 완장인 게여!"

며칠 전 다시 읽은 소설 '완장'의 클라이맥스 장면이다. 주인공 임종술은 47만 평이나 되는 저수지에서 무단 어로행위 감시원으로 일하고부터 '완장의 맛'에 취해 거들먹거리며 살았는데, 데퉁맞게도 자신을 채용한 사장한테까지 대들다가 보기 좋게 잘리고도 외려 반발하며 행짜를 부렸지만 결국 물에 빠진 생쥐꼴이 되고, 이때 애인 부월이가 종술한테 "함께 멀리 떠나자"며 울부짖듯 각성을 청하는 대목이다.

윤흥길의 베스트셀러 '완장'은 드라마로 방영된 적이 있지만 작품성 자체로도 워낙 유명하다. 완장이 '어쭙잖은 권력'의 상징어로 자주 애용되는 사연이 여기 있다. 이 소설의 미덕은 구수한 사투리와 맛깔진 묘사와 같은 문체뿐 아니라 모두가 공감하는 권력에 대한 풍자가 통렬하다는 거다.

주인공 임종술의 캐릭터는 속된 말로 '단무지'다. 완장의 힘만 믿고 안하무인을 일삼는, 깡패 기질이 다분한 속물 그 자체다. 시대적 배경은 컬러TV가 막 나오던 80년대 초여서 작가가 겨냥하고자 했던 당시의 권력이 그럭저럭 유추된다.

종술의 권력은 사실 쥐꼬리만 한 것이지만, 완장만 차면 모든 사람의 사생활까지도 무소불위로 간섭할 수 있는 것처럼 걸음걸이나 눈빛, 말본새 등 '오버'를 일삼는 호통과 심통으로 곳곳에 잘 드러나 있다.

종술은 주제파악을 못한 데다 꽉 막혔다. 완장 찼다고 버스 무임승차에, 낚시꾼을 상대로 폭력과 원산폭격도 서슴지 않고, 가뭄 때문에 물을 빼겠다는 수리조합 관계자한테조차 "누구 맘대로!"를 외친다. 심지어 자기 목줄을 쥔 최 사장 일행의 낚시놀이도 "놀더라도 낚시만은 안 된다"며 가로막을 정도다. 오로지 공유수면관리법을 빙자한 어족자원 보호만 앞세운다.

종술의 막무가내식 행동은 당연히 완장의 힘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는 가난 좀 덜어보려고 한밤중 몰래 그물을 던지다 들킨 초등학교 동창을 '치죄'하고 나서는, 빼앗은 뗏목 위에서 '큰 깨달음'을 얻는다. 완장으로 얻은 기회는 천하 없는 무리를 해서라도 결코 놓칠 수 없다는 다짐과 함께 내뱉는 말. "돈도 완장이고, 지체나 명예도 말짱 다 완장이여."

완장은 곧 권력인 것이다. 권력에 대해 어떤 독일 사상가는 "사회적 관계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는 확률"이라고 하고, 어떤 미국 학자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결정하는 힘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영향력"이라고 정의했다. 사전적으로는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이다. 이것 공권력 형태만이 아니라 인간 관계가 존재하는 어디에나 작용할 수 있다. 이른바 권력 의지가 인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원천임에랴. 권력의 토대는 돈, 조직, 인기, 재능, 심지어 아름다움(매력)도 해당되며, 그 위에서 권력자는 각각 일정한 범주와 형태로 꿀을 빤다.

그러나 거대 권력일수록 꿀맛뿐 아니라 쓴맛도 각오해야 한다. 작가는 '완장' 서문에서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마땅한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현실을 둘러보면 여러 가지로 착잡해진다. 종술 같은 자가, 종술만 못한 자들까지 설치고 있어서다. 비판을 듣기나 하는지, 또 들으면 아파하긴 하는 건지 죄다 의문스러울 때가 많다. '겸허한 수용'도 알고 보면 선택적이고 변명은 늘 준비돼 있다.

소설에서 종술은 망나니, 괴물쯤으로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에게 사줄 만한 게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불알친구부터 모시는 사장 앞에서까지 얀정없이 나댈지언정 '우리끼리' 혹은 사사로이 물고기를 잡아 배불린 적이 없다. 또 갖은 위세를 부리다가도 초등학교 은사의 벼락같은 꾸지람에는 조아리고 쩔쩔맸다. 막판에 부월이가 집에서 패물을 몽땅 빼돌릴 속셈을 드러내자 "그럴 수 없는 거여"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염치도 엿뵌다.

권력 추구는 본능의 영역이랄 수 있다. 마키아벨리나 '권력의 법칙'을 쓴 R.그린의 통찰처럼 비정하고 기만적이기 일쑤다. 어쨌거나 모든 '완장'들은 종술보다 낫기를 소망해 본다. 뻔뻔하지도, 몰풍스럽지도, 간사하지도, 되바라지지도 않고 그저 완장에 눈멀지 않기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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