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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8.19 17:13:30
  • 최종수정2021.08.19 17:13:30

안남영

전 HCN충북방송 대표

신독(愼獨). 고교 때 율곡 이이의 좌우명이라고 배웠다. 보기 드문 한자 때문에 억지로 외운 단어인데, 문득문득 깊이 담긴 뜻이 뭘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있다. 뜻풀이 자체보다 율곡은 하필 왜 이걸 자경문(自警文)의 으뜸으로 삼았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더 컸었다. 요즘 그 뜻이 갈수록 중요해진 듯싶어 율곡의 형안이 새삼 존경스러워진다.

인류는 동물과 차원이 다른 공감과 협력을 가능케 한 인지혁명 덕분에 자연계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고도의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면 생존은커녕 협업이 필수인 농업이나 공동체 건설이 힘들었을 거란 생각은 유발 하라리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수긍된다. 문명은 어쩌면 집단거주, 도시화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에 와서 인간관계가 더욱 밀접하게 얽히고설키게 됐지만 고립이 가속되거나 또 그걸 즐기는 모습도 뚜렷해 보인다.

어쩌다 외따로 사는 '자연인'이 TV에서 낭만적으로 조명받는 건 여유에 목마른 도시적 삶의 각박함에서 나온 것이라 치자. 하지만 혼밥, 혼술, 혼영(-映/영화관람), 혼행(-行/여행) 등 이른바 '혼○문화'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건 분명히 유행이다. 이 도도한 현상이 어디로 확장되든 이상할 게 없다.

하긴 혼자 즐길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 덕분에 물리적 고립이 불편하지 않다. 배달거래 보편화나 '스몸비'(스마트폰+좀비) 같은 행태도 따지고 보면 고립의 습관화 과정이거나 그 결과다. 1인 가구 비율이 32%까지 갔다. 그뿐인가. 전문가들은 메타버스(가상세계)가 세상을 삼킬 거라고 말한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는 2016년 "VR이 가장 뛰어난 소셜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하더니 며칠 전 "5년 내 메타버스 기업이 되겠다"라고도 말했다. 예상컨대 '또 다른 이승'에서 아바타의 존재감으로 생을 소비하는 좀비들이 폭증할 것이다. 가상공간의 진화로 현실이 '홀앗이 권하는 사회'로 더욱 빠져드는 가운데 신독의 거론 자체가 뜬금없을 것이다.

어쨌거나 간섭을 거부하는 개성 연출이 존중받는 사회다 보니 고립주의가 낭만주의로 대접받는다. 좋게 말해 독립이고 안분지족이지만 이걸 반길 수만 없다. 취업난이 심해지면서 자발적 고립에 들어간 청년들이 많다. 이 사회가 어디까지 무던해져야 할지 고민스러운 부분이다. 게다가 고독사 증가 문제 앞에서 고립의 낭만을 이야기하는 건 사치다.

그럼에도 '세상에 신독의 기풍이 충만하다면 어떤 에너지 분출을 도울 수 있을 텐데' 하는 기대가 있다. 신독을 모르는 사회는 암울하다. 수치와 위선을 모른다. 분노 조절도 안 되고…. 성찰이 없으니 신뢰라는 사회자본을 까먹는 게 문제다. 신독이 사라진 자리가 새벽 시간 신호 위반 정도라면 아무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 몰지각한 일탈을 실제 매일 접한다. 대표적 예가 인터넷 댓글의 폭력성이다. 익명성에 숨어 존재감을 드러내는 행태에 신독은 없다. 너나 없이 내뱉는 가래침이 난비하는데 준열함은 없고 비겁함만이 선하다. 메타버스 시대에 신독과 담쌓은 진상들이 더욱 걱정된다.

도올 김용옥은 신독이 '중용'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고 했다. 혼자 있어도 단정한 태도,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걸 정치가 방해한다. 이쪽을 향한 온갖 댓글질을 보면 복면 쓴 욕설과 조롱, 폭력성이 날마다 신독을 모독한다. 저주와 배설이 태반이어서 표현의 자유가 무색하다.

사람이 모이면 정치가 시작되는 법, 누군가는 이익을 나누어야 하고 그 권한을 놓고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정치학자 D.이스턴의 정의대로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강압 없이도 수용, 복종을 담보하는 권위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 환생하신다면 가능할까? 요즘의 가치 논쟁이 민주주의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무의미하진 않겠지만 그처럼 갈등지향적이고 비생산적이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한때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 회자됐다. 남한테는 봄바람처럼, 자신에겐 추상같이 대한다는 건데, 신독의 또 다른 다짐이다. 겪어 보니 신독은 수양이요, 인내여서 만만치 않다. 그러기에 지루함이거나 스트레스다. 머지않아 어떤 형태로든 그걸 풀어보려는 자들에게 메타버스는 마물단지가 될 것이다. 부질없어 보이지만 거기서 암약할 아바타에게도 신독을 미리 권하고 싶다. 아바타에겐 위선과 편가르기, 공격이 없기만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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