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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6.08 17:27:43
  • 최종수정2020.06.08 19:35:15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서원대 교양학부 겸임교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커피가 있다. 카페인이 들어 있는 것과 들어 있지 않은 디카페인 커피(Decaffeinated Coffee). 커피의 기원은 기록으로만 쳐도 1000년을 거슬러 올라가지만, 디카페인 커피의 역사는 100년을 조금 넘어섰다.

아라비카 커피가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됐을 때, 정교회 수도자들은 커피를 마시면 졸지 않고 밤새기도를 드릴 수 있고 젊은이처럼 에너지가 솟구친다며 크게 반겼다. 홍해를 건너 아라비아 반도의 이슬람 수피교도들에게는 식욕을 떨어뜨림으로써 금욕주의를 실천하는데 유용한 도구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카페인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커피를 ‘고행자를 위해 신이 내려 주신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카페인의 존재는 그 효과보다 검은 커피의 빛깔 때문에 꼬리를 밟혔다. 사실 카페인의 색깔을 따지자면 흰색이다. 카페인은 메틸크산틴(methylxanthine) 계열에 속하는 알칼로이드로서, 한 분자에 질소 원자를 4개나 가지고 있는 흰색 결정체이다. 그럼에도 카페인이라고 하면, 검은 색이 떠오르는 것은 커피의 고유한 색상 때문이다. 커피를 볶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멜라노이딘(melanoidine) 색소가 검은 빛깔을 내는 원인 물질이다. 간장이 커피와 비슷한 색상을 띄는 것 역시 숙성되는 과정에서 멜라노이딘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색이라고 하면, 프리즘을 통해 빛에서 무지개색을 찾아낸 아이작 뉴턴(1642~1727)과 함께 요한 볼프강 괴테(1749~1832)를 빼놓을 수 없다. 뉴턴은 파장과 반사 등 과학적 이론을 통해 색의 원리를 풀어낸 반면, 괴테는 심상의 색(color association)을 발견했다. “색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 괴테의 견해는 당장 미술에서 인상주의의 태동을 자극했다. 아울러 인간의 감성을 이성과 같은 반열의 주체로 세움으로써 과학이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을 메워주었다.

괴테는 1777년에 하르츠 산악지대의 브로켄 산을 오르다가 멀리 눈 덮인 산의 색깔이 시시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보고 색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20년만에 ‘광학론’을 내고, 33년만인 1810년에는 색상환이 들어 있는 ‘색채론’을 출간했다. 괴테가 없었다면 색을 감상하고 상상에 빠져드는 즐거움을 우리는 누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 즈음 독일의 젊은이들에게 커피는 없어서는 안될 음료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커피를 물처럼 마셔 대는 딸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심정을 코믹하게 그린 바흐의 커피칸타타(Kaffee Kantate)가 작곡된 것이 이 보다 거의 1세기를 앞선 1732년이다.

1819년 바이마르에서 70세를 맞이한 괴테는 카페에서 시커먼 물을 쉴 새 없이 들이키는 젊은이들을 보고 근심에 빠졌다. 그는 25살의 젊은 화학자 프레드리히 페르난드 룽게를 초청해 당시 매우 귀중했던 아라비안 모카(Arabian mocha) 커피를 대접하고는 “왜 젊은이들이 검은 음료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지를 밝혀 달라”고 부탁했다. 괴테는 커피에 젊은이들을 중독시키는 무언가가 있다고 직관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흰색의 카페인 결정체가 모습을 드러냈고, 커피에서 추출했다고 해서 독일어로 카페인(Kaffein)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하지만 이 때도 카페인이 인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었다. 괴테의 직관에 따라, 카페인이 인간의 정신에 작용할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을 뿐이다. 다시 65년이 지난 1884년에 독일의 헤르만 에밀 피셔에 의해 카페의 화학구조가 밝혀지고, 카페인이 신경전달물질인 아데노신과 모양이 비슷한 덕분에 뇌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카페인을 빼도 커피의 색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디카페인 커피가 일반 커피와 똑같이 보인다. 하지만 커피를 마시면 가슴이 뛰거나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하면서도 커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된다.

한 잔의 디카페인 커피를 앞에 두고 색을 통해 본질을 꿰뚫은 괴테를 떠올린다. 진실이란, 때론 이성을 앞세운 논리보다 순간적인 직관(intuition)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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