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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4.01 16:59:29
  • 최종수정2019.04.01 16:59:29

박영순

<이유있는 바리스타> 저자, 커피비평가협회장

강둑 경사를 따라 밤사이 개나리가 피어났다. 프루스트가 마들렌 향기를 맡는 순간 과거의 한 때로 빠져 들었던 것처럼, 초등학교 시절의 봄이 보였다. 담장을 대신한 철망을 따라 피어난 개나리는 무심천으로 이어졌다. 북문로와 사직동을 잇는 돌다리가 내려다 보일 땐 첨벙첨벙 물 속을 뛰어 다니며 피라미를 몰던 동무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졸업한 뒤 4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벗들의 얼굴이 이토록 또렷하다니……

추억은 기억보다 강하다. 커피를 마실 때에도 종종 비슷한 경험을 한다. 잘 익은 파인애플과 패션프루츠를 함께 입안에 넣은 듯한 '콜롬비아 킨디오 라모렐리아 농장 커피'는 해발 2000m 커피 밭에 섰을 때 이마의 땀을 시원하게 씻어준 한 줄기 바람을 불러 일으킨다. 결이 고은 복숭아의 속살을 한 입 베어 문 듯한 '에티오피아 함벨라 실린가 농장 커피'는 두 살 난 아기를 품고 커피열매를 수확하던 열 여섯 살 아프리카 애기 엄마의 따스한 미소처럼 정겹다.

사실, 더 미스터리(Mystery)한 것은 커피를 마시면서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능력이 어디서 왔느냐는 점이다. 강아지도 맛이 좋은 음식을 먹으면서 과거의 한 때를 생각할 수 있을까· 타잔의 친구였던 침팬지 '치타'는 맛있는 바나나를 먹으면서 타잔과 함께 줄타며 정글을 뛰놀던 때를 그리워했을까·

세계적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것을 떠올리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이다. 언어 능력(linguistic competence)이 바로 그것인데, 인류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사고할 줄 알게 됐고, 따라서 지식을 쌓아 갈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만~7만 년 전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언어 능력을 갖게 된 인류는 마침내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로 퍼진다.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탄생한 것이다.

커피를 음미하며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우리의 능력도 바로 이때 부여됐다. 고로, 커피를 마시면서 향미를 감상하고 추억에 잠기는 것은 매우 인간적이며, 위대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이 능력을 활용하지 않는 분들이 더 많은 듯싶다. 한 잔의 커피를 마주하고 "너는 어디에서 왔니·" "너는 어떤 맛을 지니고 있니· "그 향미를 얻게 된 사연은 무엇이니" "너가 나의 관능이 되어 줄 때 나는 어디로 시간여행을 갈 수 있을까·"라고 속삭인다면, 그 커피는 우리에게 영원히 잊히지 않는 추억을 선물한다. 모든 커피가 우리의 감각(Sensation)을 지각(Perception)으로 안내하고, 마침내 인지(Cognition)와상상(Imagination)로 승화시켜 주는 것은 아니다.

마시는 커피가 깨끗한 지 따져야 한다. 깨끗함의 진가는 커피의 향미를 섬세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데서 드러난다. 섬세함(Delicate)이란, 여리고 약한 면모들이 제 각각 억눌림이 없이 작은 매력들을 고르게 발산하는 상태에서 감지된다. 커피가 지닌 모든 면모들이 존중 받는 평화로운 향미의 세계를 비유한다. 델리케이트는 엘레강스(Elegance)와 함께 커피 향미에 대해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다. 우아함 역시 어느 곳 하나 모난 구석이 없어야 한다. 모든 요소들이 균형을 이루 상태, 하모니를 이룬 상황에서만 맛볼 수 있는 관능인 것이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 선생께서 생전에 최고의 작품을 "엘레강스하고 델리케이트하다"고 묘사한 것도 이와 같은 심정에서 였을 것이다.

지저분한 유리창을 통해서는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쓰고 떫고, 마르고 할퀴고, 찌르고 아린 맛은 유리에 묻는 때와 같다. 사실 이런 것들은 맛이 아니라 자극이고 통증이다. 우리의 관능이 통증을 겪는 상황에서 과일과 같은 경쾌한 산미와 꽃 같은 화사함, 꿀을 연상케 하는 단맛 등 스페셜티 커피의 덕목을 누릴 수 없다. 결점들이 이들 향미를 짓누르고 있는 탓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깨끗한 커피를 만날 수 있는 것일까· 자라난 환경을 올곧게 반영하는 커피를 찾아야 한다. 출처를 알 수 없는 커피는 '탄생의 비밀'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는 그리스 비극보다 잔인하다. 좋은 커피를 찾는 걸음은 이름을 묻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향미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없는 커피는 성장과정을 알 길 없는 인조인간과 같다. 인성이 없다는 것은 커피에겐 향미의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인스턴트커피보다 지루하고 따분하다.

사람답지 못한 사람과 커피답지 못한 커피라는 표현은 결국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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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27일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국회박물관 대강당에서 '정치선진화를 위한 헌법 개정 대토론회'를 개최한다. 헌정회는 지난해 11월부터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해 개헌의 방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국가 100년 대계 차원의 조문을 만들었다. 이 연구에 이시종 전 충북지사도 참여했다. 정대철 회장은 "정쟁을 해소하는데 개헌의 방향의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헌정회가 개헌안 마련에 나서게 된 배경은. "헌정회는 오늘날 국민적 소망인 정치권의 소모적 정쟁 해소와 지방소멸·저출생 등 국가적 위기 상황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국가적 과제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는 이러한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구 유럽처럼 정쟁을 중단시키는 장치인 내각불신임·의회 해산제도 없고, 미국처럼, 정쟁을 중재·조정하는 장치인 국회 상원제도 없다보니, 대통령 임기 5년·국회의원 임기 4년 내내 헌법이 정쟁을 방치 내지 보장해주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헌법개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서 헌정회가 헌법개정안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동안 헌법개정은 여러 차례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