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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시인, 주성초등학교병설유교사

산사를 내려오는데 햇살이 따듯하게 등을 어루만진다. 기다려주라고. 평균수명 100세를 향해 달리는 우리는 언제고 꿈꿀 수 있는 나이라고. 다 잘될 거라고 토닥토닥 나를 쓸어준다.

날이 참 좋다는 말이 입안에서 절로 피어오르는 날이다. 안성 칠장사를 찾았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마음이 편안하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산사에 오면 왠지 푸근해진다.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 지장율사가 창건했고, 그 후 고려 현종 5년(11세기경) 혜소국사가 7인의 악인을 교화하여 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화에 따라 산 이름을 7현 산(七賢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칠현인이 오래 머물렀다 하여 절 이름을 칠장사로 불리게 되었단다. 임꺽정과 궁예 그리고 어사 박문수에 관련된 이야깃거리도 함께 갖고 있어 회자되는 절이다.

천왕문을 들어선다. 사천왕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 사탕과 지폐가 보인다. 누군가 그것을 놓고 기복을 했던 듯 제법 많은 양이 놓여 있다. 나도 조용히 손을 모아 본다. 사천왕을 지나 절 마당으로 발을 딛자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퇴색해 버린 대웅전이 낯설게 다가온다. 보통의 절은 대웅전을 가장 화려하게 해 놓는데, 이곳은 단청이고 기둥이고 빛이 바래 문양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세월의 풍화를 한 몸에 담고 있는 모습이 삐까번쩍한 여타 절들의 대웅전보다 훨씬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나한전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은근히 경사진 곳을, 한 걸음 한걸음 오르니 어사 박문수 합격 다리가 보인다. 다리 난간에 오색의 천들이 누군가의 염원을 달고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저 빼곡한 기원들이 모두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나도 멈추어 긴 끈에 소망을 적어본다. 초록색 끈이 합격 기원이란다. 동생과 아이의 합격 기원 문구를 써서 다리에 걸고 다시 손을 모은다. 그런 나를 보며 동행한 친구가 말한다. 진심으로 소원이 성취되길 원한다면 나한전에 꼭 가서 기도해야 한다고.

어사 박문수가 두 번이나 과거를 낙방하고 세 번째 시험을 보러 가는데, 그의 어머니가 유과를 챙겨 주며 칠장사에 꼭 들러 가라고 간곡히 말했다고 한다. 박문수는 이곳에 유과를 바치고 나한전에서 하룻밤 묶었단다. 그때 꿈에 나한전의 부처님이 나타나 과거시험의 시제를 불러주었고, 박문수는 그 덕에 진사과에 당당히 수석 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25세부터 도전한 시험을 8년만인 32세에, 즉 삼수 끝에 장원 급제한 셈이다. 시험을 앞둔 부모는 꼭 들러야 한다는 친구의 말에 신을 벗고 내부로 들어서 절을 하고 소원을 빈다. 혜소국사와 7인의 나한이 다 알고 있다는 듯 말없이 나를 맞이한다.

박문수도 8년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 하지 않는가. 박문수가 살던 조선 시대 왕들의 평균 수명은 겨우 46세였다고 한다. 당시 서민들의 평균 수명은 약 35세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8년은 긴 시간일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문수의 어머니는 얼마나 애간장을 졸였을까. 예나 지금이나 자식 잘되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그 당시 8년에 비하면 100세 시대에 8년은 아주 짧은 시간인 것이다.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하리라.

서두르지 말자고 내가 나에게 속삭인다. 세상에 골고루 살점을 떼어주고 있는 무수한 햇살처럼 무수히 많은 시간이 우리 곁에 있는 거라고. 하루의 몸통이 서서히 구부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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