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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1.23 13:38:48
  • 최종수정2015.11.23 13:38:47

임미옥

수필가

만나본적 없는 작은 생명체가 발산하는 힘이 어찌 강한지 그 힘의 위력은 거의 제왕적 수준이었다. 그 힘에 끌려 우리가족은 긴장하면서, 몇 달 넘게 꼼짝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녔다. 그 생명체는 내 생활을 올 스톱시켰다. 뿐만 아니다. 프로젝트에 매달려 밤을 지새우는 건 예사였고 승진가산점수가 어쩌니 하면서 휴직을 권유하는 내말을 귓등으로 듣던 딸을 전격 휴직에 들어가게 했다. 임신 확정이지만 혈루(血漏)로 아기가 안정하기까지 위험성이 크다는 의사 말에 딸이 굴복한 것이다.

두 달 이상 꼼짝 말고 누워 지내라는 병원판정은 형벌이었다. 화장실만 가도 머리만 감아도 기침만 해도 혈이 비쳐 정(正)자세로 가만히 누워 지내야하니 형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기형아가 나오면 어쩌나 염려되시죠· 아기 건강하곤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자궁내막에 고인 피가 움직일 때마다 흐르므로 자칫하면 쓸려 나올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자라기까지 누워 있어야만 합니다." 의사의 말에 진땀이 났다.

피가 둥글게 고인 가운데 점처럼 작은 것이 반짝이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이란다. 흑암의 수중에서 풍전등화(風前燈火)임에도 열심히 헤엄을 친다. 우리는 점과 같은 생명체에 희망을 걸고 올인 했다. 생명은 하늘의 뜻에 달려있는 것, 딸이 할 수 있는 일은 부동자세로 누워 시간을 감내하는 것뿐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딸 옆에 있어주면서 포기하지 않게 용기주고 우울하지 않도록 대화하고 돌봐주는 거다.

청주 집으로 데려오고 싶지만 오다 차가 흔들리면 심히 위험했다. 나는 아침마다 청주에서 딸아이 집 세종시를 향하여 가속페달을 밟았다. 그 어떤 약속이나 여러 바쁜 일들도 세종으로 달리는 나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죽음의 그림자가 둘러싸고 끊임없이 위협하는 가운데서도 계속 움직이며 자라는 아기가 대견했다. 태아는 우리가족을 살얼음판 걷듯 간절하게 했고, 경거망동하지 않게 했다. 딸은 24시간 내내 누워 지내다 보니 밤과 낮이 엉켜버렸고 등에선 욕창이 날 정도였다. 그뿐인가· 겨우 자리 잡아 가슴 쓸어내리니 갈비에 실금이 가도록 입덧으로 토를 했다.

드디어 왕관 쓰고 아기가 나왔다. 세상에 축제도 많지만 새 생명 탄생 경사보다 클까. 왕이라 표현함은 작은 아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온 가족은 아기의 충실한 종이기 때문이다. 가족 모두의 삶의 패턴이 왕 중심으로 돌아간다. 안방을 아기에게 내주고도 불평은커녕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감지덕지했다. 응애하고 이리 오너라 부르면 밤이고 낮이고 달려가 촉각을 세우고 왕의 뜻을 헤아리며 귀 기울인다.

유달리 잠이 많아 날마다 깨워서 출근시켰고, 결혼해선 제 남편 밥도 못해주고 나간다니 어찌 애를 키울까 했던 딸은, 응애하면 한밤중에도 수차례 발딱 발딱 일어나 눈을 지리 감고 젖을 물린다. 아기 젖 넘기는 소리처럼 좋은 음악이 있을까. 좋은 그림도 많지만, 모든 고통 잊고 제 자식을 사랑하는 자식모습이 보기 좋다. 그런데 또 다른 통증이 왔다. 젓 몸살로 고열에 시달려 눈물을 철철 흘려도 이기적인 우리 왕 배를 채우곤 나는 모르쇠 잠만 잔다. 돌봄 이를 구하네 하더니, 꿈틀거리는 아기가 제 가슴만 파고들자 휴직 연장이야기가 나온다. 가히 왕의 위력이다.

할머니 된 소회를 묻는 질문을 받는다. 나이 듦을 인정하기 싫다, 내 자식보다 더욱 사랑스럽다, 돈 주머니를 열고 있어야 한다, 말들 하지만 나는 생명의 귀함을 말한다. 전쟁 통에 피난 다니던 난리 속에서도 신생아는 왕이었다. 낳고서 부모가 돌보지 않는 불행한 아기도 누군가에게 왕 같은 대우를 받았다. 분홍피부의 작디작은 생명에게 이런 보살핌이 없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왕이었던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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