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웹출고시간2015.10.05 13:26:32
  • 최종수정2015.10.05 13:26:32

임미옥

작가

한가위 명절날 보름달이 떠올랐다. 달의 크기는 언제나 동일하지만 달이 가장 지구 가까이에 왔을 바로 그때에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이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 그럴 경우 사람들은 그 달을 수퍼 (Super Moon)문이라 부른다. 지구 주위를 타원으로 공전하는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게 되는 시점이 올해엔 마침 추석날이었다. 18년 만에 떠오른 보름달은 늘 상 보던 보름달보다 14% 정도 크고 밝기는 30%정도 밝다고 한다. 달은 과연 서정을 불러내기에 충분할 만큼 커다랗고 맑았다.

올해도 나는 명절 음식준비를 마친 추석전날 밤에 시댁 동네를 걸으면서 달구경을 했다. 하지만 낭만도 잠시, 크고 둥근 달을 마냥 서정에 잠겨 즐기기엔 몸이 지나치게 피곤했다. 며칠정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다. 어김없이 차올라 떠오른 보름달처럼 가도 아주 가는 것은 아닌, 때가 돼 다시 나올 수 있다면 좋겠다. 명절 연휴 동안 가방을 싸들고 홀연히 여행을 떠나는 일은, 내겐 정녕 꿈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다.

죽지 않을 만큼 아파 입원이라도 해보고 싶다 주문처럼 말한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하지만 흔한 맹장염 한 번 걸리지 않고 꼬박꼬박 팔남매 맏며느리 역할을 32년째 해오고 있다. 확실한 핑계로 명절마다 당직하는 공무원 친구가 부럽다. 누군가는 당직을 해야 하는데, 제주(祭主)가 아닌 자신에게 부탁하여 거절할 수 없다는 게다.

아침 설거지 하고 잠시 커피한잔 하며 쉬려면 성묘 갔던 남자들이 온다. 새참 차려낸 설거지 하고 점심상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스멀스멀 불청객 오는 신호가 온다. 이틀 전부터 서서 있다시피 했으니 어이 안 올까마는, 명절증후군이라 불리는 이 손님, 기어이 다녀갈 추세다. 가만히 스며든 통증은 시댁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허리를 휘돌아 손끝 발끝을 지나 입원하지 않을 만큼 온 몸을 쑤시고 다니며 고통을 준다.

나는 낀 세대 맏며느리다. 낀 세대란 미국 사회학자 도로시 밀러가 처음 사용한 샌드위치세대를 일컫는 말로서 부모 부양 의무를 다하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신의 노년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세대이다. 이젠 며느리와 사위를 보았지만 내가 할 일은 늘었다. 분가해 사는 아이들이 명절 쇠러 와도 모두 손님이라 편히 아프지도 못한다.

'명절 며느리 필수품' 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가짜 깁스'가 지난해부터 SNS에서 언급되기 시작했다. 작년에 품귀현상까지 벌여졌던 핫 아이템인 가짜깁스가 다시 인기몰이 중이란다. 버즈량이 올 추석에 더욱 늘어난 가짜깁스는 1만7천 원짜리 완구용품이다. 한쪽 손을 감싸고 10분정도 기다리면 팔다리를 다친 환자처럼 만들어 감쪽같은 깁스붕대가 완성되는데, 신세대 며느리들이 쇼맨십으로 이용하느라 구입한다고 한다.

애교로 넘기기엔 이기적인 행동 아니냐는 부정적인 시각이 많지만, 피할 수 있다면 비켜가고 싶은 그 마음만은 이해된다. 세월에 익혀지지 않는 것이 없을 진대, 며느리를 봤음에도 추석이 부담스러운 것은 여전하니 신세대 며느리들이야 오죽하랴. "당신도 내년엔 하나 사다줄까?" 낀 세대 며느리들에게 깁스 하나씩 착용하라는 터무니없는 법이라도 제정 되면 좋겠다고 밤새 앓으며 중얼거리는 내게 남편이 하는 말이다.

가짜깁스를 하고 나 홀로 쇠는 명년 추석을 상상해본다. 우선 32년 동안 꼬박꼬박 차려낸 아침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해방감을 느리게 누리면서 늘어지게 늦잠을 잘 거다. 그리고 모닝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거다. 점심은 달달한 빵 한조각과 에스프레소 한 잔이면 굳! 추석특집 영화티켓을 컴퓨터로 예매 하고 심야에 팝콘세트를 들고 영화관 의자에 깊숙이 앉아있는 흐뭇함이여…. 흠! 그때다. "어머니! 저희 왔어요!" 아이들 소리가 꿈을 깨운다. 아프고 아파도 반가운 맘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