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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작가

초등학교 다닐 때 책상가운데에 금을 긋던 기억 한번쯤은 있을 거다. 나 역시 금을 잘 긋던 아이였다. 학년이 바뀌면 금이 그어져 있는 책상도 있었다. 전에 앉았던 누군가도 나처럼 금 긋기를 좋아했었나 보다. 경계선을 칼로 파서 선명한 책상을 만나면 절대 지워지지 않아 좋게 생각했다. 무의식중 남자짝꿍 팔이 경계선을 넘어오기라도 하면 밀쳐내곤 했다. 그리고 선 안에 있는 아이하고만 친하게 지냈다.

색도 경계선이 뚜렷한 색을 좋아했었다. 미술시간에 그림을 그릴 때면 빨강, 초록, 파랑, 등 선명한 크레파스를 사용했고, 원색의 머리핀을 꽂았다.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게 해주는 정서의 토대를 진단하는 방법으로 정신과에서 환자가 색을 선택하는 것을 관찰한다. 감정 상태를 색으로 나타낸다고 보는 거다. 옷도 신발도 가방도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이 나를 대변하는 색이었다면, 어릴 적 나는 주관은 뚜렷했으나 경계선이 선명하여 누구나 스며드는 자유로움이 결여된 아이였나 보다.

선을 긋는 다는 건 너와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데…. 그때부터 시작된 나의 선긋기는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가 되도 멈출 줄 몰랐다. 멈추기는커녕 경계선이 더욱 선명해지면서 중간지대를 못 견디어 했다. 왜 그랬을까…. 지금 와서 생각하니 경계선을 안 넘어 오려고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불편해하던 그 아이에게 미안하다.

자아정체감이 불안정하여 혼란하던 시기부터 그어대던 경계선, 자라면서 더욱 선명하게 그으면서 들끓던 젊은 날을 보내고…. 나이 들고 철이 들어서야 경계선이 희미해지면서 폭넓게 선을 넘나들며 사람을 사귀는 일이 큰 행복인지도 알게 됐다.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나면 '네가 예전에 너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이다.

그런데, 아직도 명확하게 해야 할일과 하지 말아야 할일을 규정짓지 못하는 경계혼란영역이 있다. 아니, 혼란이라 표현한 영역지역을 의도적으로 엉키게 한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거다. 세상엔, 내안에 있는 싸워야할 대상과 외부로부터 오는 싸우지 말고 참거나 돌아가야 하는 대상이 있다. 그런데, 싸워 이겨내야 할 내 것들에겐 너그럽게 대하고 싸우지 않고 참거나 돌아가야 할 대상과 싸우느라 힘을 소진한다.

싸워 이겨내야 할 대상은 목숨처럼 지키고 싶은 알량한 자존심이나 아집, 내 것이 아닌 넘보지 말아야 할 것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 등이다. 그리고 좀 더 자자 다음에 하자 하는 게으름 같은 것들이다. 이런 것들은 너무 쉽게 용납한다. 그러나 싸우지 말고 참거나 돌아가야 하는 외부로부터 오는 것들에겐 의연하게 대하지 못하고 나만의 모호한 잣대로 선을 지우기도하고 긋기도 하며 주관적으로 유동한다.

특히 나의 약점이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엔 지나치도록 예민하게 반응하며 한 치 양보 없이 덤벼든다. 상대가 조금만 그 선을 넘어와도 참지 못하고 즉시 분을 발한다. 참거나 돌아가면 아무 문제없이 지나갈 일을, 알아 달라고 누군가를 괴롭히면서 소리치곤 뉴욕 타임스 스퀘어 광장에서 길을 잃고 서성이는 아이처럼 후회하며 허둥거린다. 참거나 돌아가지 못하고 싸우는 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부정적 요소들에게 진 싸움인 것이거늘…. 늘 상 뒤늦게 깨닫고는 부끄러워한다.

비가 시작됐다. 오래 기다린 비다. 비는 창을 타고 음악처럼 흐른다. 커피를 탔다. 커피, 물을 붓는 즉시 서로에게 녹아들며 화음을 잘도 이룬다. 너무 진하지 않은 갈색커피 한 모금의 향…. 입 안 가득 번지고 목젖을 타고 넘어가며 폐부에 스며든다. 맛이 깊다. 깊은 사람…. 녹아들지 않으려면 품기라도 할 것이지, 비는 대지를 적시고 대지는 비를 품고 커피는 마음을 적시는데, 나는…. 나는 어찌된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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