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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수필가

셋방살이 하던 신혼시절부터 삼십대 중반까지 일곱 번 이사를 다녔다. 그때 마다 살뜰히도 끌고 다녔던 물건들이, 내 집을 장만하여 이곳으로 온 뒤론 하나둘 창고로 들어가 긴 세월 잠자고 있다. 기억 저편서 22년 동안 갇혀 있던 묵은 정취들….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되어 꺼내고 보니 많고 많기도 하다. 이삿짐을 싼다는 건, 묵은 세간들을 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세간들도 세월 따라 늙는지 가치가 없게 됐다.

아까워서 못 버리고, 추억이 담겨 버리지 못했다. 결혼 30년이 넘었으니 이쯤에서 한번쯤 짐을 정리할 필요가 있지 싶다. 추억이 서린 물건들이라 해서 모두 가져갈 수는 없는 일, 새집에서 새 마음으로 살자 마음먹었음에도 망설인다. 버리자. 버려야 한다. 폐기물자루에 물건들을 담을 때마다 이별의식이라도 하는 듯 물건마다 서린 추억들을 더듬고 있다. 그림액자를 떼니 탈색하지 않은 벽지가 네모반듯하다. 젊은 날 알뜰히 살아 집 장만의 꿈을 이루었을 때, 잠을 설쳤던 네모반듯한 초심이다.

이번만큼은 물건들을 마구 버리더라는 말을 들어도 마땅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친정 부모님 사랑이 담긴 장롱을 비롯한 오래된 가구들이 폐기물로 나간다. 큰아이가 아들인데 어찌 개구 지던지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장난감을 망치처럼 들고 장롱을 두들겨 패고 서랍들을 꺼내 밟고 놀며 자란지라 성한 구석이 없다. 정들어 서운하지만 아이들을 키워낸 흔적이라 생각한다. 새 아파트엔 붙박이로 가구가 마련 돼 있어 서운한 맘을 접기가 수월하다. 과감히 버리고 나니 이삿짐이 단출하다.

솜이불을 꺼냈다. 목화솜을 놓아 어머니가 해주신 이불 두 채중 한 채는, 보따리를 풀지도 않고 있다. 혼자선 들기 조차 버거운 넘치는 어머니사랑, 30년 넘게 끌어안고 산 어머니 숨결이다. 딸아이 시집갈 때 내 어머니처럼 농사지은 솜으로 만들어 주진 못해도 우리전통 솜이니 솜을 타서 두어 채로 나누어 만들어 줄까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막상 닥치자 침대생활에 맞는 가벼운 이불들을 장만해 보냈다.

헐값으로 이불을 팔겠다고 여기저기 전화했다. 사기는커녕 폐기물딱지를 붙여 내놓으란다. 폐기물이라니, 멀쩡한 이불이 폐기물이라니, 어찌 그럴 수가. 생각해보니 양모이불에 길들여진 나도 솜이불을 폐기물로 밀어내는데 한몫했다. 솜을 햇볕에 말리고 홑창은 삶아 풀을 먹여 꼭꼭 밟아 시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버려야지, 그래도 버릴 수야, 첨단과학의 성과를 누리고 살면서 솜이불만 포기하지 못한다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겠지. 오른편이냐 왼편이냐 고민한다. 다시 잊혀 진 물건으로 새 아파트 장롱 안에 갇혀두느니 버리자. 폐기물로 나가는 왼편으로 밀어 놓았는데….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보인다. 그날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는데 어머니가 흥얼거리며 이불을 꿰매고 계셨다. 막내딸이 시집가서 덮을 이불을 꿰매니 어찌 즐겁지 않겠냐 하시던 모습이 선연하다. 눈물이 난다. 버릴 순 없다. 이번에도 솜이불은 새집으로 함께 간다. 22년간 정든 집은 쉽게 남에게 팔고 가면서 오백 원 가치도 인정해주지 않는 솜이불을 경전처럼 끌고 간다. 어머니 숨결 솜이불과 네모반듯하게 살아 얻어냈던 젊은 날 집장만의 초심을 함께 꽁꽁 묶어 새집으로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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