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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과 황제를 겸했다는 '천황', 그 자체가 비논리적

25. 히로시마 대본영과 메이지천황
한국사에서 메이지… 무쓰히토(睦仁)천황은 침략을 의미
천신(天神)과 황제를 겸한 시대에 맞지 않는 용어가 천황
천황은 역사의 물꼬를 돌릴 수 있는 역사성 보유

  • 웹출고시간2013.04.16 18:29:5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5. 히로시마 대본영과 메이지천황

■ 대본영의 메이지천황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쌓은 후시미성 모모야마에 있는 메이지천황의 능.

일본이 청과 전쟁을 결정한 1894년 6월 5일은 조선침략을 결정한 날이기도 했다. 침략과 전쟁 준비는 착착 준비해놓았다. 1893년 5월 미리 칙령 제52호로 '전시대본영조례'를 제정해서 막료 편제를 정했다. 천황과 육군참모총장, 해군 군령부장, 참모차장 등 군 지휘부로 대본영회의를 구성하는 내용이다.

9월 15일 메이지천황이 도쿄에서 대본영과 함께 히로시마성 안으로 들어왔다. 10월 15일에는 임시제국의회도 히로시마에서 소집되었다. 의회는 전쟁을 뒷받침하는 기구에 불과했고, 정부는 도쿄에서 열강 외교를 통해 전쟁을 지원했다.

원폭으로 파괴된 히로시마성 부속건물의 주춧돌.

러일전쟁과 중일전쟁 대본영은 도쿄 청사를 사용했기 때문에 히로시마대본영은 희소성을 갖게 되었다. 패전시까지 존속한 중일전쟁 대본영은 1944년 8월 정부 협의기능까지 확장해 '최고전쟁지도회의'라고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어떤 이름이든 골자는 천황 아래 최고통수부를 두고 육해군을 망라해서 지휘한다는 것이다.

1873년에 찍은 메이지천황.

메이지천황(1852~1912)은 한국근대사에서 쓰라린 기록과 함께 나온다. 본명이 무쓰히토(睦仁)인 그의 생모는 궁녀인 나카야마 요시코(中山慶子)로서, 가계를 조사하면 구조 아사코(九條夙子)가 적모(嫡母)로 나온다. 그는 게이오(慶應)란 연호를 쓴 고메이(孝明)천황의 아들이었다.

고메이천황은 유신의 실권자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살당했다는 설이 있다. 여하튼 1867년 메이지천황이 즉위할 때의 나이는 만 14세였다. 천황을 장악한 조슈와 사쓰마 군벌들은 군비 확장에 몰두했다.

대규모 군대를 외국에 보내 침략을 시작할 때 메이지천황은 이미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제국일본의 군대는 천황의 이름으로 욱일승천기를 들고 점령지에서 만세를 불렀다. "덴노헤이카 반자이(天皇陛下 萬歲)! 그리고 학살이 뒤따랐다. 천황은 그 최고책임자였다.

■ 천황과 부신(父神) 모신(母神)

일본 사람들의 천황관은 현대의 불가사의에 속한다. 고대사회의 가장 강한 신인 천신(天神)은 하늘을 다스리는 신이었다. 그렇다면 천황도 하늘을 다스려야 하는데 그런 위치는 아닌 모양이다. 인간사회에 내려와 있다.

천황은 중국에서 '만물의 왕'이란 말이었으나 허세가 심해 사용하지 않았다. 왕 중의 왕 태양왕이란 표현도 현대사회에선 쓰지 않는다. 민주사회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군주제인 나라도 황제란 말을 하지 않은지 오래다. 오직 일본에서만 천신과 황제를 겸한 명칭을 지금까지 쓰고 있다. 또 독자 연호를 쓰는 대표적 경우도 일본과 북한뿐이다.

더구나 천황의 부모를 부신(父神) 모신(母神)이라고도 한다. 혹 외국 수반과 회담하며 천황의 부모를 언급할 때 부신과 모신이라고 말하면 얼마나 어색할까. 오늘날 여러 나라가 교류하며 서로 소통되는 말을 써서 대화를 한다. 천황과 신을 내세우며 같은 가치관을 가져달라고 하면 소통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일본에서 천황제 폐지론은 일찍이 자유민권운동 시기부터 나왔다. 전쟁책임론부터 전근대 신분제의 유산, 그리고 종교상의 문제 등 갖가지 폐지론이 있다. 예산이 많이 들고, 황실 일가가 놀고먹는 것에 불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본 여론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의 상징 천황인 채로 좋다"는 의견이 많다. NHK가 2009년 시행한 여론조사는 존속이 82%, 폐지가 8%였다. 정치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에 찬성한 비율은 6%인데 우경화가 심해진 지금은 더 많아졌을 수도 있다.

■ 천황이 돌릴 미래의 물꼬

1912년작 다이쇼(大正)천황(왼쪽)과 1938년 일본제국 육군을 열병하는 쇼와(昭和)천황.

메이지나 다이쇼나 쇼와천황이 주는 인상은 무엇보다 일본제국의 폭력성이다. 군마를 탄 통수권자가 군복을 입고 사열하는 사진은 그 군대에게 상상 못할 피해를 당한 사람에겐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제 두 세대가 넘었지만 역사 기록을 통해 전승된 가해 사실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해행위를 부정하거나 축소해서 더 깊이 마음속에 각인시켰다.

아베정권이 역사교과서에 자랑스러운 내용만 싣기로 했다고 언론이 전한다. 일본근현대사는 자랑거리가 많다. 세계 문화와 과학에 크게 기여하였다. 경제 강국의 위상은 명백하다. 아시아의 근대화를 선도한 일본의 공적은 매우 크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이 진솔하게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면 그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런 물꼬는 극우를 대변하는 총리가 아니라 천황이 돌릴 수 있다. 우선 천황이란 이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어차피 땅에 발을 딛고 있는데 하늘의 황제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그냥 왕이라도 해도 좋을 것이다.

다음으로 패전 이래 제대로 하지 못한 지난날의 침략과 수탈 그리고 학살 책임을 분명히 하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하는 것이다. 그 방법은 역사기록을 바로 보면 찾을 수 있다. "언제까지 반복해서 사과를 하란 말이냐." 이런 반문도 있다. 우스운 말이다. 메이지유신의 역사를 일방적으로 미화하면 아무리 말로 사과해도 그것은 허사에 불과하다.

천황을 보는 또 다른 시각은 허수아비의 애처로움이다. 깊은 궁궐 속에서 떠받들려진 존재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결정할 수가 없다. 그래서 '통석의 념'을 운운하는 이상한 말로 귀한 기회를 날려 보냈다.

하지만 강국 일본과 국민통합의 상징인 천황은 미래의 물꼬를 선택해서 물이 흘러갈 방향을 고를 수 있다. 역사성과 현재성이 부여된 위상을 일본 국민이 믿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천황이 과거의 역사과제를 풀어낼 수 있으면 그 존재의미는 크게 부각될 것이다.

■ 대본영은 증오의 시작점

도쿄 고교(皇居)의 장화전(長和殿). 연초에 천황 일가가 여기서 국민에게 인사를 한다.

교토의 고쇼(御所)가 막부 치하의 무력한 천황을 의미하면 도쿄의 고교(皇居)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제국이 치장한 천황을 상징한다. 궁궐 내의 장화전은 남북으로 160미터가 되는 긴 건물이다. 그 난간의 중앙 부분에 방탄유리를 설치했다. 여기에서 천황이 국민과 만난다.

매년 1월 2일과 현 천황의 탄생일인 12월 23일 천황과 황실가족이 나와 손을 흔든다. 그 장면을 텔레비전 화면이 연신 비춰준다. 2만 명까지 모이는 정원에서 일장기를 든 사람들이 가득 차 소리를 지른다. "덴노헤이카 반자이!"

그러나 메이지를 계승한 천황은 아시아인을 자유롭게 만나지 못한다. 전쟁책임이 무거운 쇼와를 비롯 현 천황까지 아직 증오감을 풀지 못한 까닭이다. 유럽을 방문해도 피해자 유족이 던지는 달걀이나 화염병이 날아든다.

고교 안에서 보는 삼중교의 첫 다리. 멀리 긴좌(銀座) 거리의 건물이 보인다.

히로시마대본영이 이런 증오의 시작점이다. 그곳은 이제 폐허가 되어 기단석만 남았다. 일본은 패전 이후 대일본제국을 과거로 보낼 시간이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극우세력은 여전히 침략전쟁에 긍지를 갖는 것 같다. 그래서 역사 갈등은 아직 해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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