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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고쿠 고치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일본의 근현대사는 군국주의와 패전을 빼곤 모두 자랑스런 역사
시바료타로 소설과 드라마가 부각시킨 지난 천년 간 최고의 인물 료마
사카모토 료마를 내세운 관광상품 범람이 역사의 실상을 가리게 해

  • 웹출고시간2013.03.05 18:51:1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21. 시고쿠 고치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고치역 광장에 세운 사카모토 료마(가운데), 다케치 한페이타(왼쪽), 나가오카 신타로(오른쪽) 동상.

메이지유신! 동아시아 근대화의 시작은 메이지유신이었다. 메이지정부는 서구문화를 수용해서 일본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체제 전반을 변혁했다. 부국강병국가가 목표였다. 이 목표 달성은 성공했다.

메이지유신은 세계사의 기적이었다. 일본이 승리한 러일전쟁은 비유럽국가가 유럽국가에게 패배하지 않은 유일한 사례였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선각자들이 일본에 직접 가서 국가혁신을 배웠다.

지금 아시아 국가들은 일본의 근대화 길잡이를 잘 알지만 그것에 감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를 떠올리면 증오감에 치를 떤다. 서구열강의 침략과 수탈을 그대로 모방하면서 잔학한 행위와 대량 학살은 서구 열강을 능가하였다.

메이지유신은 시작 단계부터 침략을 노래했다. 처음 어디에서 이 노래가 나왔는지는 모르나 요시다 쇼인과 후쿠자와 유키치가 널리 전파하였고,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 등 이른바 정한론자가 목청을 높였다.

일본에서 지난 1천년 간 활동한 정치인 중 가장 존경을 받는다는 인물이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1867)이다. 그는 사쵸동맹을 주선해서 막부타도에 공을 세운 인물로 비교적 깨끗한 인상을 준다. 메이지정부가 탄생하기 전에 암살당해 국가폭력의 집행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료마조차 조선 침략의 야욕은 분명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울릉도를 개척해서 외세를 막는 요새로 삼자는 말을 했는데 그것은 남의 나라 섬을 빼앗자는 말이었다.

■ 일본에선 근현대사가 자랑스런 역사

일본에서 근현대사는 자랑스러운 역사이다. 메이지유신 이후 부국강병국가를 만든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만 태평양전쟁 패전만 아쉬울 뿐이다. 한국전쟁이란 호기를 타고 부자나라가 되면서 현대사에 대한 긍지도 높아졌다.

한국에서 근현대사가 비판 일색인 것과 대비된다. 한국사에선 대원군정치부터 개화파의 활동 그리고 계몽운동가에 이르기까지 호된 비판을 받고 있다. 긍정 일변도의 평가는 그리 많지 않다. 심지어 독립운동가들도 사상과 방법론 때문에 받는 비판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지만 일본사에선 이런 호된 비판이 거의 없다. 군국주의 비판이 엄중하긴 하나 러일전쟁과 경제부흥의 찬사 속에 가려져 있다. 오히려 패전에 책임 있는 군국 일본의 집권층과 전범까지 되살아났다.

그런 반전의 시작부분이 시바료타로가 쓴 일련의 소설들이었다. 그 소설에선 여러 시대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와서 새롭게 해석되었다. 작가의 논리로 덧칠한 인물 평가는 신선하게 보였다. 근현대사 재해석의 핵심은 '밝은 메이지'였다.

"작고 가난한 나라인 일본이 열강의 침략을 막기 위해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유신에 성공하였다. 유신의 지사들은 고난 속에서 체제를 바꿔서 근대화를 이룩했고, 동아시아 강국인 청과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삼국간섭으로 일본의 전쟁 획득물을 빼앗은 러시아에게 도전하여 승리해서 마침내 세계 5대강국으로 부상했다." 이것이 '밝은 메이지'의 핵심을 이룬다.

■ 메이지유신 최고 공헌자가 된 료마

나가사키의 료마동상.

소설가가 쓴 허구의 이야기가 근현대사의 사실로 전승되고 있다. 신기한 일이다. 신화와 역사가 뒤섞인 고대사의 줄거리를 사실로 믿고, 천황과 같은 용어를 고집하는 사회라서 '그런가 보다.' 할 수도 있다.

보통 소설은 주인공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치장을 한다. 그런 미화를 통해 지난 천 년 간 일본의 최고 정치인으로 평가받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시바료타로의 『료마가 간다』가 그 소설이고, 사카모토 료마가 그 인물이다.

소설을 쓴 시바료타로도 역사적 사실과 허구인 소설은 다르다고 했지만 독자들은 구분하지 않았다. 2010년 1월 요미우리신문 광고에 2,40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 이 소설의 전파력을 알 수 있다. 『언덕 위의 구름』은 1,900만부라고 했다.

더구나 『료마가 간다』는 텔레비전 시대극과 대하드라마로 1968년부터 2004년까지 4차례나 방영되었다. 그때마다 료마는 일본사회를 들뜨게 했다. 정점이 2010년 48부작으로 찍어 방영한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이다. 소설과 드라마로 각인된 이런 료마의 이야기를 모르면 일본인이 아닌 것처럼 되었다.

잇달아 유행한 것이 메이지유신 최고의 공헌자 료마의 행적을 따라가는 여행이었다. 고향인 고치에서 교토, 교토에서 에도(도쿄), 고치에서 하기, 나가사키에서 시모노세키, 구마모도와 가고시마 등 료마의 족적을 따라가는 답사가 번져갔다.

가고시마의 신혼여행지에 세운 동상.

료마가 잠시 거처했던 집들과 여행했던 장소 그리고 등산했던 산까지 찾아갔다. 심지어 신혼여행지도 관광지가 되었다. 지금 그 대부분의 장소에는 갖가지 형태의 동상이나 안내판이 세워져 답사자를 맞이한다.

■ 최고의 관광사업 료마 상품

시고쿠(四國)는 글자 그대로 에히메(愛媛), 가가와(香川), 도쿠시마(德川), 고치(高知) 4개 현으로 이루어진 섬이다. 시고쿠섬의 남단에 고치(高知)현이 있다. 고치역을 나서면 여기가 료마의 고향이란 것을 바로 알게 된다. 여기저기 관광거리로 소개하는 내용이 사카모토 료마 일색처럼 보인다.

료마는 세 가지 이미지로 나온다. 한 손을 옷자락에 넣고 꾸부정한 모습의 사진이 가장 널리 퍼져있다. 또 하나는 그런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이다. 대형 조형물부터 작은 목상까지 널려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때문에 『료마전』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福山雅治, 1969년생) 분장사진도 료마의 실제 사진만큼 유명해졌다.

고치역 광장에는 드라마의 주요 등장인물인 다케치 한페이타(武市 半平太, 1829~1865)와 나가오카 신타로(中岡愼太郞, 1838~1867) 동상이 료마상 양쪽에 나란히 서있다. 고치역사 건물의 한편에는 드라마 장면을 보여주는 전시도 하고 있다.

료마가 살던 고치의 옛 동네에 세운 기념관

료마가 태어난 집터와 살던 동네에도 표지를 세웠다. '시립료마기념관'은 작지만 성장과정을 표현한 전시 내용이 짜임새가 있었다. 입장료가 있어도 끊임없이 관람객이 들어왔다. 그림과 함께 어록도 소개해서 누구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이처럼 기념관을 통해 역사인물을 친밀하게 만드는 솜씨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었다. 이방인들도 어린이 그림으로 설명하는 료마에게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정도였다. 살던 집이나 동네를 모형으로 보여주는 전시는 치밀하면서도 정감이 우러나게 했다.

고치에는 이런 기념관이 무려 3개나 있다. 그의 짧은 일생을 밀랍인형으로 전시한 '료마역사관'도 있고, 아름다운 해변 가쓰라하마에는 태평양을 바라보는 언덕에 커다란 '사카모토 료마기념관'도 세웠다.


사카모토 료마를 내세운 관광상품의 홍수 속에 빠지면 동아시아를 대국적으로 바라보는 안목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영웅론만 우뚝할 뿐이다. 메이지유신을 위해 헌신한 인물, 어린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 모험을 즐기면서 시대의 한계를 애썼던 노력, 마지막으로 암살단에 기습받아 쓰러진 만 32세의 극적인 죽음만 보인다.

료마와 메이지유신을 동아시아역사 속에서 왜 다시 보아야 하는가· 일본사에서 보는 메이지유신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의 역사 속에서 보는 시각이 일본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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