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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연

시인

내게는 장시(長時)를 옮겨 적고 그 옆에 작은 그림도 그려 넣을 만한 크기의 도마가 하나 있어 분명 어느 외진 산허리에 섰던 나무의 무릎이었을 것이다

칼질을 하기 전 무릎을 쓰다듬는 손 아래서 긴 삭풍의 입 다문 소리가 들리고 등 푸른 고등어의 허리를 절단할 때 또한 그런 소리가 들린다 나무의 단편(斷片) 위에 어느 집짐승의 뒤꿈치를, 숨의 안을 밖에 올려놓고 다질 때는 무릎 위에 또 다른 무릎이 앉혀져 뒤척이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

도마는, 나무는 무릎을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 썰물이 되어 밀려가는 굳은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만한 난도질에 한 둥치 사상이 쓰러진 줄 알겠지만 그저 무릎 한 편(片)을 내어주었을 뿐

내게는 밑줄이 많은 새 공책 크기 딱 그만한, 고공의 산허리에서 투쟁시를 쓸 딱 그만한 나무의 무릎이 하나 있어 무릎을 세우면 종지뼈 검은 옹이 안에서 동고비 울음이 눈아(嫩芽)처럼 쏟아지고 탯줄 같은 생명의 뿌리가 내릴 것 같은 사람, 세상의 등 돌린 벽과 싸우다 남은 도마 같은 무릎 한 그루가 있어

-시 「나무의 무릎」 전문

한파가 몰아닥쳤다. 비가 오던 끝에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한파주의보는 날씨에만 온 것이 아니다.

언론계에도 한파가 불고 있다. 주요 방송사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이 하루아침에 보이지 않고 시사 프로그램도 속속 폐지되고 있다. 그보다 앞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설치하여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핑계로 방송·유튜브를 통제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언론 탄압이라면 일제 강점기 때 일정의 탄압과 감시, 그리고 군부독재 하의 언론 탄압이 생각난다. 물론 그 뒤로도 집권 정치가들은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언론을 호도하고 장악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언론 생태계는 숱한 탄압을 견디어 내며 지금껏 성장하고 있다고 믿었고, 최근의 사태가 생기기 전까지는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자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보장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나의 생각이 일순간에 무너지고 만 것이다.

언론의 날 선 비판의식이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공공선을 지켜간다고 믿는 나로서는 이 현실에 화가 난다. 이런 언론 통제와 탄압에 대해 외신들도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한다.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중파에서 밀려난 많은 기자와 앵커들은 유튜버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들은 정당한 사유 없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소명의식에 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나무의 무릎」 시는 도마가 된 나무를 두고 쓴 시이다. 매서운 북풍이 부는 산허리 비탈에 서서 쓰러지지 않고 굳건히 버티어 내는 나무. 무릎 꿇지 않는 나무. 그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봄날 옆구리에서 푸릇한 연두 싹을 틔우는 나무. 그 나무는 탄압 속에서도 무릎 꿇지 않고 저항하며 자신의 말과 글를 멈추지 않는 언론인들을 닮았다.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중이 아닌가. 홀로 선 나무 곁에는 홀로 선 나무가, 그 곁에는 또 다른 홀로 선 나무가 버티고 서 주어야 한다. 그렇게 언젠가는 나무들이 모여 서서 숲이 되고, 숲에서는 싹이 트고 꽃이 피어나고 열매가 맺힐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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