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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4.26 14:41:30
  • 최종수정2022.04.26 14:41:30

조우연

시인

산수유, 매화, 생강나무, 꽃다지, 민들레, 봄맞이꽃, 진달래, 제비꽃, 철쭉. 이렇게 봄꽃 이름을 부르다보니 출석부를 들고 교탁에 서서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것만 같다. 이름을 부를 때마다 자기만의 빛깔과 향기로 네! 하고 대답을 할 것만 같다.

그러다 문득 가슴이 미어진다. 꽃잎들이 와르르 떨어져 내리는 것만 같다. 언제부터 봄꽃 피는 4월이 그렇다. 이름을 불러도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세월호 아이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동백꽃이 떨어지는 4월은 제주 4·3사건이 떠올라서 아프기도 한 달이다. 제주 4·3사건을 들여다보면 사상과 이념과는 무관한 시민들의 희생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하여 나는 4월이 되면 가슴에 4·3사건을 추모하는 동백꽃 배지와 개나리꽃 같은 노란 리본 배지를 단다. 그런 내게 누군가 한번은 당신은 정치적으로 진보냐, 좌파냐며 물어온 일이 있었다. 아마 속으로는 빨갱이냐고 묻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다수의 무고한 인권이 무참히 짓밟히는 폭력과 참사는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소수 지배자들의 정치적 이념 때문에 발생하고 왜곡되었다. 그들은 정치적 이념으로 국민을 편 가르고 추궁하며 인권보다 우위를 선점하는 데에 그럴싸한 사상적 이유를 거론해 왔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편향적인 이념적 사고에 갇혀버렸다.

그래서 가슴에 노란 배지를 달면 내게 묻는 것이다. 너는 좌익 빨갱이냐고. 나는 좌익 빨갱이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또는 이 질문이 갖는 사상적 편향성이 지닌 폭력이 불편하고 괴로워서 질문을 아예 무시해왔다.

도대체 이 세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더 우위를 가질 수 있는 사상이 있단 말인가. 사람보다 더 가치로운 이념이 있는 것인가 말이다. 애초에 이념 역시 사람이 사람답게 잘 살기 위한 목적으로 몇 날 며칠 고심하여 완성된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깟 이념 때문에 슬픔을 나누는 일에도 색깔론을 씌워 손가락질을 해야되겠는가 말이다, 라며 그저 속으로 생각하곤 했다.

지금 제주 평화공원 야외에서 4·3 사건 추모시를 전시하고 있는데, 슬픔을 함께하는 마음으로 다음과 자작시를 보내어 전시 중이다.



레드 아일랜드

동백이 피는 섬에는

꽃이 붉게 피어나는 일이

무서운 계절이죠

꽃이 떨어지는 자리가

붉게 물드는 사월은

가슴을 치는 계절이죠

할머니가 옥춘동백을 꺼내

제사상에 올리는 날은

봄인데도 자꾸 추워져요

붉지 마라

발갛게 피지 마라

빨간 것일랑

입지도 먹지도 보지도 마라

빨간 누명(陋名)들이 사람을 불러

벼랑 위에서 밀어버린단다

동백이 다 떨어져 버려도

섬은 붉게 붉게 아프다

한날 제삿날을 보내는 제주는 참으로 서럽고 아프다. 그 아픔을 터놓고 말하지 못하는 오랜 시간이 있었다. 올해는 세월호 8주기다. 여전히 세월호 기사 아래에는 지겹다고 하거나 그만하라는 악성댓글이 달린다. 어느 정치인의 말처럼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인지도 모른다. 좌파들이 해난사고를 정치에 이용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사과 없이 아이들을 찬 바다에 잃어버린 부모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나는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이념 때문에 서로에게 폭력의 칼날을 휘두른 기억이 아직도 우리의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그 기억이 없는 세대들에게조차 이념의 편 가르기에 이용당하고 있다.

그저 인간적인 공감으로 슬퍼했을 뿐인데 이런저런 소리를 듣는 일이 더이상 없었으면 좋겠다. 정치적 이념의 어느 한 편에 서서 저토록 붉게 피어 있을 리 만무한 동백꽃이다. 정치적 이념으로 노랗게 피어 있을 리 만무한 노란 개나리꽃이다.

꽃은 그저 꽃의 가치로 아름답게 피어 향기를 뿜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은 사람의 일에 함께 웃고 함께 울 줄 알아야 사람답다. 사람이 가장 으뜸된 가치로 먼저여야 사람다울 수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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