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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우연

시인

얼마 전 계룡산을 등반했다. 겨울에 산을 오르는 일은 그만의 매력이 있다. 그중 하나가 꿈틀거리는 산의 적나라한 등뼈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에 올라 겨울 산의 능선을 바라다보면 털 세운 짐승의 기운이 느껴지곤 한다. 풀꽃 씨앗들은 땅속으로 숨고 나무들이 잎을 다 떨군 겨울 산은 계곡의 구석구석과 산허리의 실루엣을 있는 그대로 다 내보여 주기 때문이다.

잎을 떨구고 잔가지까지 다 드러난 겨울 산의 나무들은 물구나무를 선 것처럼, 마치 여름내 땅속에 박혔던 뿌리를 밖으로 내놓고 있는 모습이다.

마른 잎새가 다 떨어지지 않고 바람에 부스럭거리는 나무를 볼 때면 누구나 한 번쯤 백석의 시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라는 시구를 떠올렸을 것이다.

나도 나무에 대해 쓴 시가 있다.

내게는 장시(長詩)를 옮겨 적고 그 옆에 작은 그림도 그려 넣을 만한 크기의 도마가 하나 있어 분명 어느 외진 산허리에 섰던 무릎이었을 것이다./칼질을 하기 전 무릎을 쓰다듬는 손 아래서 긴 삭풍의 입 다문 소리가 들리고 등 푸른 고등어의 허리를 절단할 때 또한 그런 소리가 들린다. 나무의 단편(斷片) 위에 어느 집짐승의 뒤꿈치를, 숨의 안을 숨의 밖에 올려놓고 다질 때는 무릎 위에 또 다른 무릎이 앉혀져 뒤척이는 소리가 나기도 한다./도마는, 나무는 무릎을 굽히지 않았을 것이다. 썰물이 되어 밀려가는 굳은 나이테를 보면 알 수 있다. 오만한 난도질에 한 둥치 사상이 쓰러진 줄 알겠지만 그저 무릎 한 편(片)을 내어 주었을 뿐/내게는 밑줄이 많은 새 공책 크기 딱 그만한, 고공의 산허리에서 투쟁시를 쓸 딱 그만한 나무의 무릎이 하나 있어 무릎을 세우면 종지뼈 검은 옹이 안에서 동고비 울음이 눈아(嫩芽)처럼 쏟아지고 탯줄 같은 생명의 뿌리가 내릴 것 같은 사람, /세상의 등 돌린 벽과 싸우다 남은 도마 같은 무릎 한 그루가 있어

-「나무의 무릎」 전문

정확히 말하면 나무에 관한 시가 아니고, 나무의 한 조각인 도마에 관한 시다. 도마 위에 고등어나 무를 올려놓고 탁탁 칼질을 하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한 片의 도마가 산허리 비탈에 섰던 나무의 무릎이었던 것을 말이다.

우리가 오르는 삶도 비탈지긴 마찬가지다. 산꼭대기에 무엇인 있는지 알 것도 없이 맹목적으로 오르는 사람도 있고, 자칫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천 길 낭떠러지도 있고, 잔잔하고 아름다운 능선도 보인다. 삶이 참 그렇다.

산을 오르다 힘이 부칠 때는 잠시 멈춰 서서 나무를 짚고 먼 데를 내려다보기도 해야 한다. 그조차도 버거울 땐 잠시 앉아 쉬어 가기도 해야 하고, 기어이 무릎을 꿇는 순간도 있다.

비탈에 선 나무를 만지며 무릎 꿇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았다. 그러다 얼마 전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한 유가족이 무릎을 꿇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절규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무릎 꿇는 사람의 심정. 그 절박함이 가늠되지 않는다.

꿇는 무릎은 굴종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곡절하고 단단한 마음일 때 무릎을 꿇는 것이다. 비탈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더 굳건하게 서 있고자 할 때, 그때 무릎을 꿇는 것이다.

겨울 산 나무들이 서로의 뿌리를 부여잡고 흔들리는 가지를 기대고 부축이며 혹한의 북풍을 이겨내는 것처럼 무릎 꿇는 유가족의 마음을 다는 알 수 없다 해도 그들을 위로하고 지지하는 마음이어야 할 것이다. 갈매나무 잎새처럼 떨고 있는, 그 간절한 무릎 앞에 등 돌린 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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